겨울 어느 날 북한산에서
대중음식점 ‘고향산천(故鄕山川)’¹ 이 고급요정 ‘仙雲閣’이었던 시절 우이동 쪽으로의 북한산은 주로 ‘고향산천’ 위쪽 도선사 길로 해서 깔딱 고개를 넘어 정상인 백운대에 곧바로 오르는 길을 주로 이용했었다. 그러나 그동안 백운대만도 여러 차례 다녀본 지금 구태여 찬 바람 쌩쌩 부는 이 겨울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정상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고향산천’은 산속 너무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그런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곳에 관련된 차들이 빈번히 오가며 조용하고 아늑해야 할 산속의 분위기를 여지없이 흩으러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린파크가 있는 입구에서 여기까지 걷는 동안은 멋진 노송의 모습이 눈길을 끌더라도 그에 상관없이 빨리 벗어나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북한산 길은 어느 쪽을 택하든 이런 길을 한참 걸어가며 초반 기분을 망치므로 그동안 찾는 발길이 뜸했을 수도 있다.
‘고향산천’을 뒤로하고 한적한 산속 오솔길로 들어서면 답답하고 약간은 짜증스럽던 기분에서 벗어나는 듯하다. 보름쯤 되었는지 그보다 더 전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서울에도 눈이 내렸을 터인데 오래 전의 일인 양 흔적도 없고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부는 듯해도 흙먼지가 풀썩일 정도로 메말라 있다. 뻗친 나무들은 숲이라기보다는 각각 크기가 다른 철골 위로 철봉과 철사 등을 뒤얽어 조형해 놓은 것처럼 차고 삭막해 보인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인고(忍苦)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깊은 겨울잠 속에서 숨죽이고 있을망정 그 속에는 생명이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까치들이 키 큰 나무 높은 곳에 집을 틀고 그 옆 가지 위에 나와 앉아 반기는 몸짓을 한다. 입김이 허옇게 서리는 겨울날 아침은 특히 까치들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음을 자주 느낀다. 마른 허공에 짖어대는 그 분명한 분절음의 청량감 때문인지, 아니면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이 찾아온다는 속설이 의식되어 소리만 들어도 기쁜 마음이 앞서서일까. 까치의 존재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포착되고, 또 그 소리는 다른 새들처럼 구르는 듯한 달콤한 멜로디가 아니어도 깎는 듯한 단조 음에서 오히려 경쾌한 느낌을 받는다.
대동문에 거의 미칠 때까지 아늑한 골짜기 길로서 바람 한 점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조차 뜸하여 마음이 한가롭고 넉넉하다. 위쪽으로 갈수록 내린 눈이 잦은 발길에 다져지고 매끄럽게 형성된 빙판길로 바뀌었다. 그래도 단번에 발바닥 전체를 지면에 댄다는 기분으로 걸으면 아이젠을 구태여 착용하지 않아도 무리 없는 행보를 이어갈 수 있다.
문안 빈터에는 지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로 왁자하였다. 여기부터 따라 걷는 성곽길은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지만, 평지성이어서 무엇인가를 떠올려 생각해 볼 여유가 있다. 동반자들 사이에서는 떠오르는 상념들을 혼잣말 비슷하게 한두 마디 던져놓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화제는 대부분 요즈음 문제로 벌어지고 있는 시사에 관한 논평이거나 범상치 않은 일들에 대한 개탄의 소리이다. 일상사이면서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앞선 일행을 뒤따르며 얼핏 들으니 몇 달 지나 잊을 만했던 체벌 중학교 여교사의 투신자살과 엊그제 어머니를 따라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음의 길을 택한 어린 아들 이야기를 꺼내 화제 삼고 있는 듯했다. 단란했을 한 가정이 조그마한 일이 계기가 되어 수습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었음을 개탄하는 소리였다. 요즈음은 어른이나 아이나 소중하게 여겨야 할 목숨을 너무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번 죽어버리면 후회할 수도, 다시는 안 그래야겠다는 다짐의 기회도 없는 것인데 순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죽음으로 주장하고 목숨을 담보로 항변하려 한다.
북한산 성곽길은 옛 선인들에게는 피땀을 흘리고 고된 몸을 추스르며 그 많은 돌을 모아다가 성을 축조하던 노역의 현장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랑곳없이 정치(情致)를 느끼며 한가로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보국문 문루가 있던 자리에 올라서서 한해의 액운을 실어 날려버리듯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까마득히 연을 띄우는 이도 있다.
보국문에서 대성암 쪽으로 가는 길은 하얀 눈길이었으며 지금은 아무도 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많이 지나간 흔적이 뚜렷하다. 가본 적 없는 이 길을 택해본다. 산행안내도로 익힌 바 있어 이 길이 대성암을 거쳐 대성문이나 대남문 쪽으로 통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인적이 드물면 호젓하고 호젓하면 눈 덮인 숲 속의 정취를 맘껏 누릴 수 있다. 일대에 공평하게 내렸을 눈이 특히 이곳에 풍성하게 순백으로 깔린 것은 그만큼 기온도 낮을 터이지만 발길이 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마침 냉랭한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주의를 기울여 들어보면 바람 소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허공을 가르다 귓바퀴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 아직도 매달린 몇 안 되는 마른 잎을 흔들며 가르는 바람. 성긴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 저 위 산등성에 서 있는 키 큰 나무들을 통째로 뒤흔드는 바람 소리 등 그 바람이 내는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과 음색조차 달라 때로는 이것이 또는 저것이 각각으로 때로는 뒤섞여 들림은 하나의 훌륭한 바람 4중주임에 손색없다.
대남문에 이르러 능선을 타고 계속해서 비봉 쪽으로 내려갈 생각도 해보았으나 시간도 늦고 점차 바람의 강도가 세어지는 듯하여 구기동 쪽으로 빠지는 골짝 길을 택한다. 그런데 이 시간에도 올라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
이들 가운데 한국인 젊은 여자와 사복 차림이지만 미군으로 보이는 청년에 눈길이 닿는다. 얼핏 들리는 그들의 짧은 대화 내용이 주의를 끌었다. 앞선 여자가 바위에 걸터앉으려 하자 뒤따르던 청년이 말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아래쪽을 몇 차례 가리킨다.
“원트?” 여자가 짧게 물었다.
“훠 유우우.” 청년이 그런 게 아니란 듯 대답하자 여자는 그럼 되었다는 듯 묵시의, 그러나 강한 의지의 몸짓으로 위를 향했으며 청년은 마지못해 따르는 눈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중에서도 줄곧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은 그들이 어디까지 오르다가 미묘한 감정의 대치를 풀고 합의점을 찾아 뒤돌아섰을까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