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등껍질.. 내 무력감의 무게
요즘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면 참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오늘 한 친구가 <변신>의 그레고리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오버랩하여 발표를 진행했다. 내가 <변신>은 제발 그만하자!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 말을 잊었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이 작품을 판타지물로 보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리얼세계의 이야기인 것을 감지한다. 이 친구는 <변신>에서의 그레고리의 "단단한 등껍질"을 이렇게 이해했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단단한 등껍질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 이 구절은 갑작스러운 ‘변신’ 이후의 무력감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이 장면을 읽으며, 때로는 나 자신도 사회의 기대나 책임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학업이나 진로 문제 앞에서 ‘무력한 벌레처럼’ 느껴질 때, 카프카의 문장이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특히 시험기간에 너무나도 할 게 많아 오히려 무언가를 시작하기 겁내하는 내 모습이 등껍질이 딱딱해진 그레고르와 별반 차이가 없는 듯.
“그는 가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 그레고르는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짊어지던 인물이었죠. 그런데 벌레가 된 순간, ‘쓸모없어졌다’는 이유로 버림받는다. 나 역시 때때로 ‘성과나 역할로만 평가받는 세상’ 속에서 불안을 느낀다. 인간의 존재 이유가 사랑이나 가치보다 ‘효율’로 결정되는 현실이 카프카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우리는 생각보다 주변인들의 기대에 의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의식을 많이 하는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진다고 봅니다. 사실 저희가 대학을 가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으려는 이유가 사실 부모님의 성향과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우리가 대학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에서 성장했다면, 만약 우리가 농경국가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났어도 지금과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질까?
어떻게 보면 대학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감상적인 생각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터 벤야민의 말이 생각한다. 그는 '경험의 빈곤'이 사람들을 낯선 유형의 절망으로 몰아넣고, "모든 것이 가장 단순하고 편안한 방법으로 해결되는" 존재방식에서 안도감을 찾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기성세대의 "경험의 빈곤", 사유의 빈곤이 이 학생에게 또는 다른 젊은 친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갑자기 염려스러워졌다. 내 설 자리는 어딜까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