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일까.

<수레바퀴밑에서>의 아들과 나

by giant mom

얼마 전 아들이 수능을 보았다. 아들은 수능을 보기 전부터 먹는 것과 자는 것, 등등을 세심하게 체크하여 수능당일을 위해 대비했다. 수능 당일날 먹을 점심을 미리 싸달라고 했고 그대로 먹어보겠다고. 잠을 자는 것도 고쳐보려고 했다. 매일 늦게 자던 습관을 고쳐 12시 전에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연습을 했다. 수능 당일, 그렇게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본인의 성적대로 나왔다. 나는 수능 당일날 학생들 수업이 있어서 아들이 시험 보러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때마침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밑에서>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내 교양수업은 학생들에게 비교적 입소문이 나서, 이번학기에는 전 좌석 만석으로 충원되었다. 그중에 의대생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유독 글을 잘 썼다. 중간에세이도 무척 인상 깊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 발표 때도 그가 쓴 감상을 보니 왜 그 학생에게서 그런 분위기가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한스를 짓누른 수레바퀴가 '명예'와 '규율'이었다면, 나를 짓눌렀던 수레바퀴는 더 현실적인 '돈', 즉 부모님의 '투자'였다. 교장의 경고는 재수 시절 내가 부모님께 들었던 "우리가 너에게 얼마를 투자했는데"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치고 싶다', '쉬고 싶다'는 인간적인 감정은, 그 '투자'를 받은 '기계'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사치이자 '성능 저하'를 의미했다. 나의 존재 이유는 '투자 대비 성능(합격)'으로 환원되었고, 그 목적을 달성해야만 하는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버렸다. 결국 '기계'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피로감, 회의감, 혹은 '내가 왜 이러고 있나'하는 불안감 같은 '인간적인' 감정들은, '기계의 결함'이자 '성능 저하'를 유발하는 위험 요소로 취급된다. 한스가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렸던 이유는, 바로 이처럼 자신의 가장 본질적인 인간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제거하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부모님과의 갈등은 바로 이 '기계'가 '인간'으로서의 목소리를 낼 때 (예: "힘들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발생했다. 그것은 '기계의 오작동'으로 받아들여졌고, 즉시 '수리'(질책)에 들어가야 했다. 나와 부모님과의 갈등은, '기계'로서의 의무와 '인간'으로서의 본성 사이의 충돌이었다. “넌 마을의 자랑이다. 모두가 너를 믿고 있다.” 이 구절 그 모든 압박과 갈등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 선정하게 되었다.




이 친구는 이 책을 읽고 친구들 앞에서 책의 내용과 자신의 일상을 연결하여 발표해 주었다. 난 이 글을 읽고 이 친구의 이미지가 이렇게 그려졌다. "사이보그 의대생". 이 친구에게는 감정을 지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이보그처럼 살고 싶지 않음을 몸부림치는 듯 보였지만 말이다. 이 학생을 보며 아들에게 내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었다. 그 결과에는 초연한 것처럼 말이다. 이 교육제도 사회의 문제, 사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아들이 스스로를 기계의 부속품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내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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