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필경사 바틀비>를 읽다!
내가 요즘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AI를 이용해 고전작품을 이해하고 읽게 하며, 친구들에게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소개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조가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자료를 만들어 발표했다. AI로 만든 부분은 책의 줄거리를 소개한 부분이다. 절대 줄거리만 소개하지, 비평은 하지 말라는 명령어를 넣으라고 했다. 기회가 닿으면 이 영상을 이곳에서 보여드리고 싶다. 래퍼들을 등장시켜 줄거리를 간략하게 구성했기 때문에, 대단히 참신하게 느껴졌다. 학생들은 주어진 소스를 가지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잘 감당하는 것 같다. 자신들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여 말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허먼 멜빌은 <백경>을 쓴 작가이며, 미국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왜 바틀비 앞에 "필경사"라는 단어를 붙였는지, 그때는 속기사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싶어서 말이다. 필경사는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던 직업군이었다. 다시 말해 서구문화권에서의 인쇄술은 1517년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인쇄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인해, 종교개혁과 관련된 은밀하고 혁명적 내용들이 전 세계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인쇄술이 행했던 작업을 그전까지 필경사가 전담했던 셈이다.
1500년대까지 필경사는 각각의 레벨로 나누어져 있었고
아마도 성경을 필사하는 사람이 최고의 대우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아직 종이가 적극적으로 보급되었던 때가 아니기 때문에, 한 글자를 틀리게 되면 비싼 가죽이나 양피지 자체를 버려야 했기에,
필경 자체가 대단한 집중과 에너지, 시간이 요구되었던 작업이었다. 그런 필경사의 의미를 멜빌이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필경사 바틀비는 1800년대 작품이기 때문에 타자기가 보급되었던 시대였고, 바틀비의 업무 자체가 대단한 고유성을 가진 직업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틀비의 반복되는 말, "I would prefer not to"(안 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때, 바틀비의 말 자체가 종교혁명과 같다. 한 학생이 한 말이 내 뇌리를 친다.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로 기존 체제 밖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이는 권위와 복종, 사회적 질서에 맞서는 개인의 저항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나는 바틀비의 태도가 그저 답답하게 느껴졌다. " 답답하게 느껴지면 안 되는 것일까. 오히려 바틀비의 침묵의 행위, 소극적 행위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 "듣기를 불편해하는 말하기의 시대"에 내가 요즘 해보고 싶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