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와 인간, 누가 먼저지?
빅토르 위고의 단편소설 중 <대포와의 전쟁>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소설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작품을 만난다면 신기할 정도로 일괄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작가의 특기인가 싶게, 대포를 의인화시켜 그리고 있다는 점. 대포의 무자비함, 야생성,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생물, 악마의 영혼... 당대 사람들에게 비친 대포의 이미지가 이와 같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쇠사슬에 묶여 있어야 할 대포가 망나니처럼 갈 길을 몰라 날뛰는 형국이니 말이다.
"대포와 전쟁"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제3부, 제1권, "워털루"편에 나오는 한 장면이라고 한다. 제어를 잃고 폭주하는 대포의 이미지는 당시 프랑스혁명이라는 대의 아래 모든 무력들이 정당화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과 같다. 감히 어느 누구도 그 무게와 공포심 때문에 대포를 제압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레미제라블>에서 대포 말고도 무력의 이미지로 상징화되는 것은 바로 '단두대'다. 단두대를 이렇게 설명한다.
단두대는 법률의 구현이다. 그리고 뱅딕트라고 불리며, 중성이 아니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중립의 위치에 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을 눈으로 보는 자는 가장 신비로운 전율을 느낀다. 모든 사회문제는 이 단두대의 칼날 주위에 그 의문점을 던진다. 단두대는 환영이다. 단두대는 나무 뼈대가 아니다. 단두대는 기계가 아니다. 단두대는 나무와 쇠와 밧줄로 이루어진, 피가 통하지 않는 기계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생물이며, 더할 나위 없이 음산한 힘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마치 나무 뼈대는 눈으로 보고, 이 기계는 귀로 듣고, 이 기계장치는 머리로 이해하고, 이 나무와 쇠와 밧줄은 의지로 영원한 것 같다. 그것을 보며 영혼이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무서운 몽상 속에서 단두대는 공포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거기서 이루어지는 일과 뒤 얽혀든다.
<레미제라블> 중에서
단두대나 대포, 모두 인간과의 관계를 적으로 간주한다. 이것이 이 작품의 키워드이다. 자베르가 행했던 이분법적인 사유, 자신이 지키는 규율은 무조건 옳고, 장발장과 같은 사람이 베푸는 자비는 다 가식이라고 믿는 그 만의 사유방식. 중2짜리 남자아이와 이 단편소설을 읽으며, 대포를 의인화시킨 빅토르 위고의 발상에 찬사를 보냈다. 대포와 같이 날뛰는 자가 되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