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밀리의 서재를 비롯,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남편이 집안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돈을 벌고 싶어서였다. 그나마 배운 도둑질이라곤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것 외에 KBS 방송국에서 2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구성작가로 시사글을 쓰는 일이었다. 그나마 강의 외에 부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우연히 "밀리의 서재"에 글을 공모하게 되었고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베스트에피소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앞서 말한 첫 번째 동기는 순전한 '어머니의 이름으로' 행한 셈이다. 학원을 잘 다니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만 다니라고 할 수 없었다. 아니 끊게 되면 그 나머지 시간에 아이들이 딴생각을 하고 방황할 것 같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잦은 다툼과 불통, 그리고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경제적 어려움 등등.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내 짐을 고등학생인 아이들도 함께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 짐은 남편과 함께 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이 꼭 타인인 것처럼, 이 짐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남편에게 "아이들의 학원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물으면 "어쩌라고? 나보고 야간에라도 뛰라는 거야?!"라고 큰 소리를 쳤다.
과거에 나도 내 어머니처럼 남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그의 모든 부족함과 결핍을 감싸 안아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했다. 그 결과, 남편에게 사기를 당했고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버릇이 더욱더 나빠졌다. <햄릿>에서 햄릿의 어머니 거투르드가 자신의 남편이 죽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남편의 동생과 결혼한 것처럼, 이상하리 만큼 남편처럼 철없게 비쳤다. 아니, 똑같아 보였다.
Queen Gertrude Character
햄릿은 그런 어머니를 이렇게 그려낸다. "그렇게도 어머니를 사랑해서 천상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너무 거칠면 어머니 뺨에 가닿지 않게 하시던 그분. 하늘이여, 땅이여, 내가 그 모든 일을 기억해야만 합니까? 그래, 먹을수록 더해지는 식욕처럼 어머니도 그렇게 애타게 아버지께 매달리곤 했지. 그런데 한 달도 채 못되어ㅡ더 이상 생각을 하지 말자.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 겨우 한 달, 아니 불쌍한 아버지의 시신을 따라가던 그 신발이 채 닳기도 전에, 그 많던 자식 전부를 읽고 눈물 흘리던 니오베처럼 눈물의 홍수도 흠뻑 빠졌던 어미니, 그 어머니가ㅡ아, 하나님, 이성 없는 짐승도 그보단 더 오래 슬퍼했을 겁니다!" 20년 가까이 떠받들어 총 해주었더니, 더 버릇없고 무례하고 속없어진 남편과 꼭 같은 햄릿의 어머니 거투르드. 이성 없는 짐승이란 말도 남편에게 대단히 잘 어울리는 어구이니 말이다.
내 아버지도 그렇게 한평생 철이 없고 한량이었다. 가부장적 체제의 예표인 것처럼 좋은 대학을 나와 검사셨던 할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남 밑에서는 죽어도 일할 수 없다며 한평생 술의 힘을 빌어 남을 탓하고 정세를 비난했었다. 자신의 실패가 세상의 탓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어머니는 이런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섬기셨고 그것을 대단한 의료 여기고, 그와 같은 현모의 모습을 여전히 나에게도 강요하셨다. 지금도 그러시다. 이 문제로 난 어머니와 다툰 적이 많다.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남편의 편을 들 수 있냐고, 어머니의 시대와 내 세대는 다르다고.
'어머니'의 이름은 단순하지 않다. 나에게 엄마라는 역할의 이름이 붙여지고 불러져서 밀리의 서재와 브런치에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신기한 인연(?)이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추후에 아마도 길게 다른 관점으로 사유하게 될 것 같다. 내 어머니와는 다르게, 남편의 어머니는 이 어머니의 역할이 버거워 남편과 서방님을 두고 집을 나갔다. 그렇다고 이 어머니를 비난하지 않는다. 물론 신랑을 저렇게 왜곡되고 폐쇄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 크다. 결혼 초에는 비난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으며 아이들을 두고 나가 놓고서, 늙고 병드니 왜 자신을 찾아오지 않느냐고 나무라는 말씀이 기막혔다. 그런데 집을 나간 그 어머니를 이해한다. 내 남편과 시아버지는 완전한 판박이 인형과도 같기 때문에 말이다. 남편의 관점에서의 어머니의 이름은 다음 호에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