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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거리

<변신> --- 쓸모없는 존재로 변해버린 나

by giant mom

글을 쓰면 쓸수록 내 마음이 어지러워 산으로 가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누군가를 죽이고자 시작한 일이 아님에도, 내 마음이 황망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끝이 보이는, 그 길을 조금이나마 이어보겠다고 작은 희망을 안고 걷는 것은 아닐까. 남편과 치고받고 싸우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오히려 같이 싸우거나 반응하지 아니함은 아이들의 마음을 어둡게 할 것 같아서 감정을 열심히 속이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말해, 글을 쓰면 내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더 절망적이게 되는 내 마음을 본다. 내 마음이 내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님에도, 내 중심에 단단하게 박혀있는 것 같다. 이 마음을 떼어내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면서, 우리들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비판적 거리를 생산하자고 해 놓고 정작 나는 거리 형성이 안된다. 이중적인 내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 고개를 흔든다.


오늘 수업시간에 학생들 중 한 조가 발표를 했다.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학생들은 이 작품을 판타지로 보기 때문인지 우리 세대가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들은 주제를 설정하여 자신의 견해를 모았다. 자신들은 "이방인"과 같다며, 낭만과 여유가 있을 것만 같았던 대학 생활이 수업과 과제의 연속이라고 스스로를 가여워한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리처럼 쳇바퀴 돌 듯 삶을 살아간다고 말이다. 자신이 곤충으로 변했든 변하지 않았든, 쳇바퀴처럼 사는 것에 대한 억울함? 나에게 있어 쳇바퀴 돌듯 사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관계의 패턴이 대량 생산을 하는 공장에서 기계가 일괄적으로 돌아가는 이미지와 같다는 점이다. 상대를 기계적으로 대할 때, 모두들 다 그렇게 산다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무감각하게 방치할 때, 모든 일들을 물질주의와 관계하여 생각할 때, 그 안에 인간됨은 없다. 내가 신랑과의 관계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이것을 말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와 통하는 가족은 한 사람도 없다. 자신의 어머니도 자신을 두려워하고 자신에게 유일하게 밥을 챙겨주었던 여동생도 나중엔 떠난다. 자신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이다.


우리 가정에서 작동되는 가부장제는 가장이 가정을 이끌고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인정하고 존경하라고 빡빡 우긴다.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이런 가정이 대단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이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은 지킬지라도, 다른 가족들의 마음과 고민은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데는 대단한 열심을 발휘한다. 비판적 거리는 나 자신으로부터 유체 이탈을 하여 나를 밖에서 바라봐야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작업은 스스로 하기보다, 작품이라는 매체를 이용하면 훨씬 더 수월해진다. 내가 그레고리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는 것. 만일 내가 곤충으로 변했다면 아니, 식구들이 나를 벌레와 같이 생각하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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