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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이름으로(2)

<82년생 김지영> --- "당신이 많이 아파"

by giant mom

싫었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여성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말이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의를 제안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강의를 해달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82년도에 태어나 한 가정을 이룬 한 30대 여성의 세계를 다룬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당신과 나의 이야기,” 영화의 카피다. 여성들에 대한 다양한 통계자료와 기사들(fact)을, 지영을 비롯한 몇몇 여성의 인생으로 한데 모아 재구성 (fiction)한 조남주 작가의 책 『82년생 김지영』이 원작이다. 2016년 10월에 출간된 책 『82년생 김지영』은 2년 만에 밀리언셀러 도서가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16개국에 판권이 수출되는 것으로 이어져 중국과 일본, 대만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원작의 화제성에 정유미, 공유가 주연해 더욱 관심을 받은 영화는 360만 관객이 관람, 2019년 한국영화로는 흥행 6위를 기록하고 호주,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 37개국에 수출되었다.


대중의 공감대를 폭넓게 형성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필자 역시 김지영이라는 캐릭터가 싫다기보다는, 빙의라는 이야기의 틀을 차용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편했다. 이 영화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의 공통적인 질문은 "왜 빙의를 통해 자신의 마음의 이야기를 해야 해요?"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여주인공이 '해리성 인격장애'를 겪고 있음을 말하며 마음의 상처가 깊었음을 의미한다. 왜곡된 사회적 인식으로 구성된 여성은 항상 약자이고 소수자와 같은 위치를 강조한 셈이다. 영화와 책은 여기서 출발한다. 여성의 위치를 먼저 점유하고 설정한다. 이 부분이 이상했다. 빙의라는 장치를 통해 동정의 눈빛으로 스스로를 채색하는 것이 오히려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냥 직선적으로 말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 어찌 됐건 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남편의 어머니를 만나면서 항상 든 생각은 왜 저렇게 오버하시지, 왜 이런 상황에서 저런 말씀을 하시지, 왜 당신이 억울하지... 등등.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 어머니가 아들 곁을 떠났고 스스로 선택한 일임에도, 자신을 대단히 연민했기 때문에 독해질 수 없었고 재산도 모으지 못했다. 어머니의 삶은 그 누구도 아닌 어머니가 사셨다. 나 역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지만, 결국 복수를 위해 혹은 남편을 죽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산다. 내가 살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내가 누구 인지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어머니의 역할이 내가 아니다. 아내의 역할이 내가 아니다. 선생의 역할이 내가 아니다. 작품 속 김지영이 이야기 끝에 자신을 위해 펜을 드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엄마의 역할이 내 정체성은 아니지만, 문제는 내 위치에서의 역할을 매개로 관계를 풀어내야 하는 자는 바로 나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종교개혁"에 관해 공부한 후 토론을 했다. 한 학생이 자신에게 있어서의 종교개혁을 이야기했다. 내용인 즉 이렇다. 어린 시절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그 학생은 친구들과 어울리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친구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미움과 회피뿐이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교사로부터 당한 아동 학대, 그렇게 찍힌 낙인으로 돌아온 그는 초 6 학년 학교 폭력 사건을 겪었고 그 이후 "인간관계 파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 파업'.. 이 친구의 고백이 인상 깊었다. 무엇으로든 되갚아 주고 싶어 하는 내 남편도 인간관계 파업을 한 사람이다. 아버님도 그랬다. 가족의 유산과 같이 되물림을 한다. 이 친구 역시 이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걸어온 기록, 살아있는 역사, 나의 존재 흔적'인 글쓰기였다고 한다. 기록은 종교개혁에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그 이유는 인쇄술, 즉 기록의 전달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종교개혁(Reformation)이 가능했다. 글쓰기의 시작, 지금의 기록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펜을 들었지만, 어쩌면 이 친구와 같이 종교개혁으로 내 안에서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워서 죽이고 싶은 마음이, 사랑해서 살아지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변하는 그 지점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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