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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독살

<독살로 읽는 세계사> --- "먹일 수 없다면 묻혀라"

by giant mom

입을 꾹 다물고 자는 남편을 보면 한 편으로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가, 다른 편에선 <햄릿>의 독살 이야기가 떠오른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 아버지 선왕은 자신의 동생 클로디어스에게 독살당한다. 따스한 햇볕 아래 달달한 오침에 취한 선왕의 귀에 독을 부어 죽게 한다. 난 항상 이 스토리를 읽으며 이상했다. 귀에 물과 같은 것이 들어가면 잠에서 바로 깨어나기 마련인데, 어떻게 바로 죽게 되었을까. <독살로 읽는 세계사>에 보면 수많은 왕들이 독살의 위협을 면치 못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이탈리아는 독약 거래의 심장부였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이 다스리던 토스카나와 베네치아 공화국에는 독약과 해독제를 만드는 제조소가 있었다고 한다. 내가 남편을 독살할 수 없는 이유는 첫째, 독약을 구하려면 대단히 가격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과, 두 번째 나란 인간은 꼼꼼하지 못해서 위험한 독을 함부로 다룸으로써 변수를 만들어 낸다는 점.


오히려 다른 곳에 묻히거나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햄릿의 아버지의 귀에 부어진 독은 소량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흔히들 벌어지는 살인의 장면을 내 식으로 다시 망상한다. 순간 의외로 내 답답함과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듯한다. 망상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닌 것 같다. 망상과 실제 실행은 한 끗 차이이기도 하지만, 내 시선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렇게 남편의 귀에 살짝 독약을 붓고 그것에 놀라 잠에서 깰 테고 왜 이와 같은 행동을 하냐고 소리를 지를 것이다. 그런 다음 난 조용히 집 밖을 나와 산책을 하다가 집으로 들어간다. 죽어 있다면 경찰에 신고를 하고 보험 회사에 연락을 하겠지. 난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뒤돌아 살짝 미소를 지을 것이다.


코코 샤넬은 어려서 망나니이버지에게 버려진 인물이다. 고아원에서 자랐고 고아원에서 지긋지긋한 바느질을 배웠다. 한평생 자신은 죽어도 바느질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그 바느질로 성공하게 된다. 그 불우한 어린 시절에 샤넬은 로맨스 소설들을 읽고 그 소설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재해석하고 상상했다고 한다. 전기 작가들이 그의 전기를 쓸 때 그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어도 그에게서 거짓말들이 쏟아져 나와 곤욕스러웠다고들 한다. 난 그 말들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또 다른 삶을 꿈꾸기 위한 그만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남편 안에 있는 자존심과 아집과 그만의 굴레가 어떤 식으로든 무너지지 않는 한, 가족 간에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2025년도에는 그날을 소망하며 더욱더 망상하고 상상하여 내 굴레를 벗어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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