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강해야지"
며칠 전 고1 딸과 마찰 아닌 마찰이 생겼다. 나에게 딸은 보통 딸과는 다른 그 이상의 의미다. 첫아들을 낳고 철없는 시아버지와 무뚝뚝한 남편과 살면서, 시꺼먼 남자들 사이에 딸이 간절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하나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 아니면 저 죽어버릴 거예요!"라고 하며 감히 신을 협박했다. 그리고 딸아이는 사춘기도 유별나지 않았고 항상 내 편이 되어 주었다. 내 마음과 거의 동일하게, 아빠 안에 있는 가부장적 속성을 함께 미워해 주었다. 우리 둘은 주변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대단히 친밀하게 서로의 삶을 세세하게 나누는 사이였고, 내 친구이자 나를 정확하게 찔러주는 독설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랑이 주식으로 집안 살림을 다 날려 먹었기 때문에, 그동안 아이들이 다녔던 학원을 정리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딸아이에게 영어 학원을 끊고 혼자 공부할 수 없겠냐고 물었다. 딸아이는 대뜸 갑자기 왜 학원을 끊어야 돼?라고 물었다. 이젠 더 이상 빚을 내어 너네들을 교육시키기가 어렵다고 했더니,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난 서운해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내 마음을 드러냈다. 진작에 학원을 끊어야 하는데, 엄마가 이렇게 막고 저렇게 막고 지금까지 버티어 왔지만 더 이상 빚을 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이다. 내 말을 이해해 줄줄 알았다. 그런데, 딸아이의 표정에는 뿔이 있었다. 무엇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냐고 캐물었더니, 다시 한방을 날린다. "엄마는 강해야지"라고 이야기한다. 순간 난 그것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엄마는 아픔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엄마는 슈퍼우먼이 돼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자리에선 울지 않았다. 딸아이에게 너 대단히 이기적이다, 엄마는 인간이 아니냐, 엄마는 단지 역할일 뿐인데, 엄마= 내가 아니다, 너도 나중에 엄마 역할을 네 정체성으로 딸이 바라보면 아마 기막힐 것이다.... 등등의 말을 나열했다. 강의 준비를 하며 혼자 많이 울었다. 딸을 이기적으로 키워온 것도 나이고, 그전까지 "엄마는 강해야 한다"는 편견 아닌 편견으로 내 아픔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항상 밝고 씩씩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물론 엄마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매우 중요하지만, 엄마의 역할이 분명 내 정체성이 아닌데 엄마의 역할이 내 정체성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 대가를 지불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딸아이 나이였을 때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는 강해야지, 엄마는 슈퍼우먼이 되어서 내 바람막이가 되어 주어야지라고 말이다. 이것은 분명 어머니의 이름에 대한 편견이며, 자식의 입장에서는 가족 공동체로서 함께 짐을 지고 싶지 않은 이기심의 발로이다. 단지 이 이기심을 어머니는 강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으로 포장한 것뿐이다. 다시 나와 딸아이의 관계를 재정리하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