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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해법 없는 가족

동정심조차 앗아간 뻔뻔한 사람...

by giant mom

어느 날, 후배가 양귀자의 <모순>을 읽어봤냐고 물었다. 읽은 적이 없다고 했고 그 후배와 함께 읽었다. 후배는 양귀자의 <모순>을 읽으며 작가의 재치와 익살이 너무나 재미있었다고 한다. 인생책, 소장각이라고. 양귀자의 <모순>은 유투버들 혹은 대중 매체를 통해 26년 만에 재소환된 작품이다. 특히 20대 젊은 층에게 매우 인기여서 개인적으로는 이상하다 싶었다. 내 어린 후배 역시 20대이고 작품의 주인공도 20대 중반이다. 그런데 난 이 책을 읽고 나서 왠지 모르게 불편했고, 소위 양귀자 선생님 그 시대의 어른들에게 화가 났다.

가족처럼 해법이 없는 공동체가 또 있을까.

25세의 안진진은 해답이 없는 공동체인 가족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그중에 가장 내 분노를 금치 못 했던 파트는 진진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아버지 이야기부터 하겠다. 여자 주인공의 아버지는 술주정꾼이다. 이런 아버지에 관해 "아버지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는 타인에 의해 한 번도 정확히 읽히지 않은 텍스트였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모독이었고 또 아버지의 불행이었다"라고 쓴다. 이 아버지는 평소에는 엄청 자상하고 나이스 하다가 술만 먹으면 괴물이 되어 집안의 모든 물건을 다 집어던지는 사람이었다. 결국 직장도 잃고 집을 나간 후 한동안 방황하다가 치매에 걸려 아내 곁으로 돌아온다.


이 소설에서 아버지에 대한 시선은 따뜻하다. 이것이 화가 났다. 내 아버지가 그랬기 때문이다. 이런 아버지들은 많았다. 알코올중독이었던 자들, 이기적이어서 가족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던 이름뿐인 가장. 자신이 힘들 때는 귀신같이 찾아와 집안에 숨겨둔 돈을 깡그리 가져가는 파렴치한. 그리고 결국 그 술 때문에 병들어 가족들이 간호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죽는 순간까지도 동정심을 앗아가는 뻔뻔한 자.

읽히기 어려운 텍스트가 아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는 그냥 못됐다. 이런 아버지들 때문에 자녀들은 늘 기가 죽어 친척들 모임에서나 학교에서나 당당하고 담대하지 못하고 그늘져 있었다. 진진이도 늘 그랬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이런 아버지 때문에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작가의 의도가 무슨 의미인지 안다. 우리네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도. 하지만 미화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너무나 많은 인생들을 망치고 아프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둥, 읽히기 어려운 텍스트라는 둥, 아버지에 대한 모독이라는 둥"이라고 하면 아버지로 인하여 망친 인생들은 어찌 살 수 있겠는가. 이것처럼 부당한 일이 있는가.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난 결혼이라는 제도를 내 삶의 탈출구로 삼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신랑과 결혼하여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아버지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결혼 밖에 없었고 그 결혼은 이제 위기에 쳐해 있다. 내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만, 여전히 망자임에도 난 그를 원망한다. 물론 이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망자를 미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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