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사건 -- 양파 때문에 살인날 뻔
어제 그의 행동을 보고 그의 안구를 뽑아야 하나 싶었다. 사건의 전말과 이유는 이러했다. 친한 동생이 양파를 두 망이나 주어, 이것을 엄마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었다. 내가 사는 곳과 엄마의 집은 차로 가면 한 시간 반정도, 막히면 두 시간이 걸린다. 밥을 맛있게 먹은 후 엄마에게 양파를 가져다 드리고 싶은데 가면 안 될까라고 물었다. 물론 내가 차린 밥상을 무척이나 큰 소리로 쩝쩝거리며 먹은 후였다.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먹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묻는 순간 눈을 치켜뜨며 나를 경멸스럽게 째려보았다. 네가 미쳤냐, 내가 내일 새벽에 일 나가는 것 모르냐,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아냐, 저것 몇 푼이나 한다고 기름값도 나오지 않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하냐 하는 표정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을 아무리 뒤져도 남편과 같은 표정은 없다. 고작 서치한 것은 그림 그리는 요령에서의 눈빛과 표정이다. 와~ 그냥 남편의 눈을 뽑아 버리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 왜 저렇게 밖에 반응할 줄 모를까. 무엇 때문일까. 매번 저런 식의 반응은?
한 여성학자의 강의를 들었다. '피해자의 오만'이라는 주제로 말이다. 남편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남편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말을 안 하니깐. 난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억울하다. 자신이 집안 재산을 다 날리고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빌라에 살게 해 놓고, 매달마다 아이들의 학원을 끊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하게 해 놓고, 왜 자신이 억울한 피해자인 냥 코스프레를 하지? 그는 자격지심으로 산다. 자신을 매일 무시한다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리고 스스로의 망상을 현실화시킨다. 나를 증오하는 눈길로 바라보며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한다. 그러면 내가 차리는 밥은 왜 먹는 거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그를 향해 셀 수도 없이 마음으로 욕을 하고 돌을 던진다. 왜 같이 살까. 물질적인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 있어 '피해자의 오만'은 없는가. 내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과연 이 말이 맞는 것일까. 학생들과 토론을 하면서 피해자의 오만을 늘 일상 속에서 범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다. 너는 틀렸고 난 옳아, 넌 구제받을 수 없지만 난 받을 수 있어, 넌 성격이 정말 나쁘고 난 성격이 참 좋아... 이와 같은 논리로 상대를 가르고 판단하며 바라보는 것.
오늘도 집으로 발길을 옮기기 싫어 수업을 마치고 스벅으로 왔다. 글을 쓰고 책을 읽건만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위하여 앉아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