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보다는 나을까.
드디어 내가 이혼한다. 어제 그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었다. 정말 계속 이렇게 살 거냐고 말 안 하고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고 계속 일 년 넘게 한 행동을 멈추지 않을 거냐고.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자신의 마음이 풀리지 않기 때문에 1년도 2년도 관계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혼하자. 그런데 이혼을 한다고 말해 놓고 왜 이렇게 기쁜지 알 수가 없다. 물론 그는 자존심만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안중에 없다. 같이 마련한 아파트에 대한 처분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합의 이혼을 안 할 수도 있다. 변호사를 사서 한 푼도 못 준다고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의 양육비와 교육비도 내놓지 않을 수도 있다. 태도는 그러했다.
그런데 난 너무 즐거웠다. 20년 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가 코 앞으로 다가온 것같이 말이다. 결혼 제도가 나를 옥죄고 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이 망할 결혼 제도로 인해 매일 죽고 싶었고 매일 차도에 뛰어들고 싶었다. 이제 이 결혼에 대해 종지부를 찍고 싶다. 그를 위해 밥을 하는 것도 그의 얼굴을 보는 것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그에게 이혼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먼저 말했다. 큰 아이는 엄마가 그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제가 하라 하지 말라 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아버지는 불쌍하지만 엄마랑 살고 싶다고 했다. 큰 아이가 고 2이기 때문에 이혼을 수도 없이 망설이고 참았는데 고마웠다. 둘째 아이의 반응은 이랬다. 드디어 가족 완전체가 깨지는군요. 그런데 엄마 이제 다른 사람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상상하니 사실 즐겁고, 아빠가 싫어했던 음식 메뉴가 있는 곳으로 외식 가요 라고 했다. 딸아이의 반응도 좋았다. 아이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진흙탕 싸움이 되지 않길 소망할 뿐이다. 20년간 내 노력에 대해 억울해하지 않으려면 여기서 끝을 맺는 것이 맞다. 물론 금전적으로 손해를 볼 것을 각오하지만 이제 눈치 볼 사람 없이 마음 편히 즐겁게 살고 싶다. 항상 그의 자존심 때문에 가정에 드리운 어둠의 커튼을 걷어내려고 노력했던 소모전을 더 이상 하지 않고자 한다. 가부장제의 수혜자들이 결국 외롭게 늙어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돌이키라고 했음에도 하지 않으니 내 손에서 완전하게 떠나보낸다. 이것이 그의 죽음이 된다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노오란 산책길>은 1982년 무렵부터 큰 며느리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작가는 우수 어린 깊은 눈을 표현하기 위하여 홍채의 노란 안료 부분에 금분을 섞어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흰 동공의 처연한 눈빛이 한결 두드러져 보인다.
나도 처연한 그 눈빛이고 싶다. 그렇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