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도 딸의 칭찬이 필요하다
언니와 통화를 하는데 언니 목소리가 바람 빠진 풍선이다. 딸과 또 한판 한 모양이다. 빵빵했던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갈 때처럼 스르르 주저앉는 언니 모습이 그려졌다. 언니는 쉬지 않고 낙담과 자기부정의 말을 쏟아냈다. “내가 저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툭하면 말 송곳을 던지냐고? 지는 아무 뜻 없이 한 말이라지만 나한테는 날카로운 비수이고 송곳이야” 이럴 때는 그냥 들어주는 것이 상책이다. “예준 엄마가 언니한테 뭐라 그랬는데?”
조카는 대기업 다니는 남편과 세 아이를 모시고 사는 전업주부다. 모시고 산다는 말이 듣는 사람은 어폐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카 생각에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남편 수입에 의존해 알뜰살뜰 살림하다 보니 남편 눈치를 본다. 조카사위가 급여 통장을 통째로 맡기지 않으니 필요한 만큼 생활비를 타서 쓴다. 그러다 보니 꼭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도 들었다 놨다만 하고 끝내 사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불만이 누적되다 보니 마음에 화가 자란 모양이다. 조카의 불만과 화가 가장 많이 전이되는 곳은 엄마의 심장. 쌓인 불만을 툭 던지면 언니의 심장은 딸이 던진 말 송곳에 뚫려 픽~~ 바람이 빠지고 만다. 생기(生氣)를 잃은 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시리고 아프다.
얼마 전 조카 손주를 보러 언니네 집에 갔다. 9세 예준이, 5세 예림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예성이가 고물고물 어울려 입양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 ‘미소’를 제 나름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얼마나 이쁜지 세상 모든 걱정이 모두 날아갔다. 왜 고양이 이름을 미소라고 했는지 물어봤더니 화내는 엄마 얼굴에 웃음이 생기라고 미소라고 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미소 덕분에 조카 집에 어른들도 웃음꽃이 피기를 바랐다. 세상 모든 할머니가 그렇겠지만 언니의 손주 사랑은 유별나다.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니 언니는 오죽할까. 손주를 보는 눈빛이 애처로울 정도로 간절하다.
세상 모든 할머니 중에서 가장 강력한 손주 사랑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언니가 얼마 전 다섯 살 예림이를 언니 집으로 데리고 왔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1박 2일 한글 교실> 언니는 오직 예림이만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짰다. 놀이터에서 놀기/ 책 읽어주기 / 한글 공부하기/ 낮잠 자기/ 맛있는 거 먹기/ 그릇 닦기 / 그냥 놀기 ~~ 이렇게 언니는 온 하루를 손주에게 바치고 거의 녹초가 됐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는 말에 놀랐다. 할머니의 힘이 이렇게 세다니 언니가 존경스러웠다. 낮에는 엄마도 찾지 않고 마냥 잘 놀던 손주가 밤이 되자 엄마가 보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칭얼대더란다. 어렵게 어르고 달래서 하룻밤을 자고 집으로 갔는데 딸한테 전화가 왔단다. “할머니 싫대. 할머니가 많이 잔소리해서 이제 할머니 집에 안 간대”라고.
이 말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언니 심장에 꽂힌 거다. 조카는 아이가 한 말을 별 뜻 없이 전했으리라. 그러나 언니 입장은 달랐다. 신뢰와 사랑이 와르르 무너진 거 같았을 거다. 분명 조카는 언니한테 송곳만을 던지지는 않았을 터인데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조카가 “할머니 밉대. 할머니가 많이 잔소리해서 이제 할머니 집에 안 간대” 이 말 대신 “예림이가 할머니 좋대. 한글 공부는 조금 재미없었지만 놀이터도 신났고 할머니 밥도 맛있대. 엄마 고마워” 이랬다면 어땠을까? 나도 나이 들어 보니 이제 남편의 칭찬보다 자식의 칭찬이 좋다. 힘이 난다. “사랑하는 내 조카 예준 엄마, 지금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너의 칭찬이야”
나도 그랬어. 너처럼
조카를 보면 예전의 나를 보는 거 같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거 같아서 늘 나를 멀찌감치 떼어 놨다. 나와 괴리된 나는 내가 늘 불안했다. 옆에서 나를 극진히 사랑해줘야 안심을 하고, 내가 잘한 것 그 이상의 칭찬이 주어지길 바랐다. 그러다 보니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타인의 관점에서 나의 삶이 시작되다 보니 나의 주변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내 삶이 꼬여가는 원인을 밖에서만 찾다 보니 우울증까지 왔다. 매사를 불만스럽게 받아들이다 보니 나가는 목소리마다 날이 섰다. 좋은 이야기를 하는데 말이 부드럽게 나가지 않았다. 내가 쏜 화살은 두 배 세 배로 되돌아왔다.
힘든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다 보니 온 가족이 힘들었다. 그런데 내가 주인이 아니다 보니 나만 힘든 거 같아 억울했다. 다른 친구들은 여왕처럼 사는데 나만 남루한 듯 괴로웠다. 비교하면 할수록 늪으로 빠졌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갈 수 없는 지친 삶의 연속으로 소중한 시간 대부분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인생 반환점이랄 수 있는 50이 되자 비로소 내가 보였다.
내가 나에게 준 선물 지천명(知天命)
논어에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뜻으로 50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나이 50이 넘어가면서 하늘의 뜻이 뭘까를 곰곰 생각해봤다. 내가 얻어낸 결론은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 본성을 찾아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하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내 삶의 주인이 바로 나 자신이니 누구 손을 빌릴 필요도 없었다. 내 하루를 내가 기획하고 나의 한 달을 내가 설계하여 일 년 농사를 잘 짓고 평생을 이어 가면 되는 것. 인생의 목표가 서니 여유가 생기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의무로 생각했던 아들. 딸과의 소통에 숨길이 트였고 타인을 더 많이 잘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를 에워쌌던 공허감이 말끔히 사라졌고 사람 보는 안목도 생겼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힘.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힘. 역량이 강화된 것이다. 지금 나는 당당하고 행복하다. 아내로서도, 엄마로서도 행복하다. 또 절친에게도 꽤 좋은 벗으로 사랑받고 있다. 경영하고 있는 <K∙인재 개발> 리더로서도 하루가 다르게 자신감이 늘어서 좋다. 내 삶의 주인이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는 순간 내 삶이 확 바뀌었다.
내가 재 발견한 지천명(知天命) 조카에게 줄게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하는 조카야. 결혼하기 전 너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참 자신만만했어. 어디 내놓아도 자체적으로 빛나는 발광체였어. 후광(後光)이 없이도 찬란히 빛나는 별이었다고. 조카야 넌 아직도 여전히 빛나고 있어. 세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라는 이름만으로도. 단지 네가 느끼지 못할 뿐이야. 내가 어두운 터널을 힘겹게 빠져나왔기에 너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고 봐. 지금 너는 터널 입구 바로 앞에 있어. 네가 눈 감고 너를 외면하기 때문에 빛이 안 보이는 거야. 일단 너를 보려고 노력해봐. 그리고 네가 가장 잘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봐.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니 전업주부가 본업이어야 하는 건 맞아. 그런데 아이들은 금방 큰단다. 아이들이 커버리면 공허하게 느껴질 거야. 그때를 대비해서 요즘 젊은 애들이 말하는 부-캐를 스스로 만들어봐.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요즘 주캐보다 부캐가 더 값이 나간대. 본래의 캐릭터와 별도로 새롭게 형성한 캐릭터, 부캐가 빛을 발하는 걸 보면서 네 생각 많이 한단다. 내가 좋아하는 걸 일단 시작하고 보는 거야. 그러면 집안도 세상도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너 자신이 행복할 거야. 그리고 당부하고 싶은 말은 실력을 키우라고 하고 싶어. 요즘 경력단절로 소외되어 있다가 되살아난 여성들 보면 꾸준히 실력을 쌓아 온 사람들이야. 너는 후광 없이도 자체로 빛을 발하는 대단한 존재야. 그러니 다른 사람과 너를 비교하지도 말고 좋아하는 일을 일단 시작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