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음악이 나와도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추는 무용수였다.
삶의 시기마다 들리는 엄격한 규칙들을 배경음악으로 삼아 나비처럼, 꽃잎처럼 춤을 추었다.
단정한 학생의 춤을,
착한 딸의 춤을,
매력적인 여자의 춤을.
시간이 지날수록 단조로웠던 배경음악은 화음이 되고 변주곡이 되었고, 나는 그에 맞는 춤을 다시 완벽하게 추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으렴.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는 인사처럼 귀에 들리던 소리. 그것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르는 순종적인 학생의 모습으로.
사춘기로 접어든 6학년,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선생님에 대한 험담을 하며 친밀감을 쌓았다. 선생님의 지시는 교실 창문 밖으로 튕겨 나갔고, 그 자리에는 사춘기 아이들의 강렬함이 빚은 혼란만이 있었다.
나도 선생님 험담을 하며 무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까, 그래도 선생님인데, 그러면 안 되는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나는 반에서 가장 조용한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아주 작은 모습으로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을 택했다.
고분고분한 태도는 나를 이루는 세포가 되어 알알이 몸 속에 박혀있었고 그것을 거스를 수 없었다. 이후로도 순종은 본능이 되어 내 삶을 지배했다.
부모님은 당신들의 딸을 자랑스러워하셨다.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계속되는 전학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성실히 공부하여 1등이 적힌 성적표를 내미는 딸을 보며 당신들 하루의 고됨을 씻어내셨다. 이렇게 힘든 날을 보내고 있지만 딸자식 하나만큼은 잘 키운다는 자부심으로 가슴에 훈장을 단 부모님의 미소가 나를 벅차게 했다.
착한 딸,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 해.
누구도 내게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내 삶의 모든 순간마다 잔잔히 들리는 반주곡이었다. 선율에 맞추어 부드럽게 춤을 추는 나는 언제나 착한 딸이었다.
나의 욕구에 앞서 부모님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는 착한 딸의 습관은 내 몸 깊숙이 스며들어 곳곳으로 번져나갔다.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들어설 때 마다 부모님을 대신하는 누군가가 등장했다. 그때마다 나의 욕구에 앞서 남들의 사정을 먼저 생각했다. 남자친구의 사정, 직장의 사정, 친구의 사정, 남편의 사정, 시어른들의 사정. 어른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해.’라는 잔잔한 반주곡에 맞추어 끊임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스무살이 되자 사방에서 새로운 배경음악이 들려왔다.
TV에서, 길거리에서, 친구들과의 수다 속에서. 모두 다 다른 음악 같았지만 결국엔 한 가지 배경음이 되어 내 귀에 들려왔다.
매력적인 여자가 되어야 해.
매력적인 여자라는 간결한 말 속에는 무수히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날씬한 여자, 그래서 스키니바지와 짧은 치마를 입어도 보기 부담스럽지 않은 여자.
하지만 몸의 굴곡은 아름답게 드러나는 여자.
잘 웃는 여자, 그래서 재미없는 말에도 깔깔 웃으며 장단을 잘 맞추는 여자.
선 넘는 말을 들어도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센스 있게 웃음으로 응수하는 여자.
가벼워 보이지 않는 여자, 그래서 몸과 마음을 함부로 굴리지 않는 여자.
하지만 눈 앞의 상대에게만큼은 한없이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다정한 여자.
지성미를 갖춘 여자.
그래서 대화가 잘 통하지만 남자들보다는 똑똑하지 않은 여자.
유난히도 강렬한 음악에 압도되어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춤을 추었다.
침대에 누워 크리스피 도넛을 하나 더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에도, 허벅지 둘레를 줄자로 재는 순간에도, 회식자리에서 술 한잔 따라보라는 주문에 기분을 망친 순간에도. 숨 쉬는 모든 거의 순간마다 들리는 배경음악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완벽한 춤을 추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어딘지 모르게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뚱뚱한 여자의 다리는 부적절한 것이었고, 웃지 않고 할 말 다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뒷담화를 불러왔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배경음악은 새롭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은 없었다. 공기를 가득 메운 여러 가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빨랐다가 느려졌다가 강렬했다가 우아했다가. 쉼없이 바뀌는 배경음악은 한데 모여 뭉개지고 이그러졌다. 완벽한 나의 춤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뒤섞인 음악처럼 나의 동작도 조금씩 무너지고 뒤틀렸다.
그리고 그 어떤 음악보다 격렬한 배경음악이 세차게 내 삶에 더해지면서 춤추던 내 다리는 찢어지고 말았다.
엄마가 된 나에게 부과된 당위의 음악.
그것은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받아들여야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모든 배경음악에 나를 끼워맞출 필요는 없었다. 어울리지 않는 음악에는 귀를 닫았어야했다.
그때 찾아오는 적막의 순간을 견디고 버티어 내는 것,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나만의 선율을 조심스레 만들어 나가는 것,
마침내 내게 어울리는 춤을 추며 내 몫의 삶을 흠뻑 누리는 것.
그것이 나의 할 일이었다.
지금 나는 귀를 닫고 내 안의 소리를 듣고 있다.
내가 만들어가는 평화로운 선율 안에는 당위의 소리도, 세상의 평가도 없다. 오직 나만의 기쁨과 슬픔이 만들어낸 단조로운 한가닥의 선율만이 있다. 그 음악에 맞추어 발끝을 들고 사뿐사뿐 춤을 춘다.
나비처럼, 꽃잎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