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살, 반짝이는 광안리 바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신나는 음악. 완벽한 날이다. 살얼음이 뽀얗게 붙은 차가운 유리잔에 찰랑거리는 맥주를 꼴깍꼴깍 넘기고 ‘키야! 완전 행복해!’라고 말하기 좋은 날. 맥주 마시기에 더없이 완벽한 날. 그런 날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맥주 대신 침을 삼키며, 내가 아는 그 120프로의 행복을 시원하게 누리고 깔깔 웃는 옆 테이블을 힐끗 한 번 쳐다보며.
임신 6개월로 접어들어 동글동글해진 내 배 안에는 연약한 생명이 숨 쉬고 있으니 맥주 같은 악마의 음료를 마실 수는 없었다. ‘아가야, 엄마는 너를 위해 저런 나쁜 맥주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단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애로운 모성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저 시무룩할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맥주 코너 앞을 서성였다. 단 1프로의 알콜도 들어있지 않은 완벽한 무알콜 맥주 몇 캔을 신중하게 골라왔다. 아무리 신중하게 골랐다 한들, 임신부 친구가 극찬한 것이라 한들, 기대에 못 미쳤다.
“이게 뭐야.. 보리차에 탄산만 넣은 것 같아.”
투덜대는 내 옆에서 남편은 미안한 눈빛으로 유알콜 맥주를 마셨다. 부러워서 화가 났다.
못 먹는 음식들이 늘어갔다. 밀가루를 많이 먹으면 아이에게 아토피가 생긴다는 시어머니의 말에 빵 냄새만 맡아도 행복해하던 나는 빵을 줄이기 시작했다. 어쩌다 한 번씩 들린 빵집에서 같은 공간을 몇 바퀴나 돌다 고른 빵은 환상의 맛이었지만 그 끝에 따라오는 희미한 죄책감은 떨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커피도, 입이 심심할 때마다 먹던 과자도 점점 멀어져 갔다.
몇 번의 구역질을 끝으로 막 내릴 줄 알았던 입덧은 출산하는 날까지 잔잔하지만 불쾌한 소화불량으로 이어졌다. 내 몸속에서 점점 자라나는 아기가 소화기관이 있는 자리까지 쭉쭉 손을 뻗기라도 하는 듯 소화를 위한 공간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빈 속이었지만 목 끝까지 음식이 차 있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탄산수를 몇 박스나 주문해 입에 달고 살았다. 이쯤 되자 소울푸드인 빵과 떡볶이마저 맛이 없었다. 일상이 주는 작은 행복, 먹는 행복은 내 것이 아닌 시간들이었다.
전속력으로 뛰어야 탈 수 있던 버스를 뱃속의 아기와 함께 느릿느릿 걸으며 보내버리던 날,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청량한 초여름의 공기가 코 끝에 머물렀고,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내려앉은 햇살은 세상 모든 것을 반짝이게 하던 날. 이런 날은 강변 따라 이어진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야 하는 날이다. 임신부에게 자전거는 위험하다는 말을 그 날 만큼은 모른 척하고 싶었다. 이렇게 상쾌한 초여름 날은 자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망설이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렸다. 햇살에 노릇노릇 구워지는 피부, 그 위로 불어오는 여름 냄새를 듬뿍 담은 바람. 묵은 빨래가 비누향을 풍기며 보송보송 해지듯 마음에 머물던 먼지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 너무 행복해! 난 아무래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어야 하나 봐.”
일조량에 따라 하루의 행복이 좌우되는 나는 완벽한 날씨 앞에서 완벽하게 행복했다. 그렇게 신나게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가르다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며칠 전 내린 비에 진흙 웅덩이가 여기저기 남아있던 사잇길을 지나던 순간, 웅덩이를 피하려고 자전거 핸들을 꺾자 자전거가 휘청거렸고 내 몸도 기우뚱거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찰나의 순간에도 아기가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평생 동안 숨겨두었던 운동신경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자전거 안장에서 떨어지는 순간 팔과 다리를 쭉 뻗어 땅을 짚었고 아기가 살고 있는 내 배는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행복했던 기분은 순식간에 죄책감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임신부에게 자전거는 분명 권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왜 자전거를 굳이 타서 아기를 위험에 처하게 한 걸까. 날씨 따라, 기분 따라 행동하는 철없는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사고로 잔뜩 풀이 죽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내 몸에는 나만 사는 게 아닌데, 내 몸은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닌데... 내 몸을 빌려 작고 연약한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아기가 안심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되뇌며 내 일신의 자유보다 아기의 안전을 앞세워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기를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지만 내가 나로 존재하지 못하고 지워진다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었다.
쾌적하고 안전한 쉴 곳이 되어주려는 노력 덕분인지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배는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점점 커져갔다. 아기가 자라나자 일상의 작은 행동들마저 힘겨운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호흡이 가빠 의식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고, 잠도 쉽게 들 수가 없어 커다란 배를 안고 이리저리 뒤척였다. 배 안에 살고 있는 아기와 모든 내부기관들이 자리가 좁다며 아우성치듯 배 아래위를 힘껏 밀어내는 것 같았다. 배 아래로도, 가슴 위로도 꾹꾹 누르는 듯한 압박을 느끼며 어렵사리 잠이 들었다가 비명을 지르며 깨는 날도 잦았다. 다리에 쥐가 내려 저리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이야. 움직일 수 없이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자다 깬 남편이 열심히 주물렀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던 만삭 임신부의 밤은 길고도 무서웠다.
원래는 온전히 내 것이었지만 마음껏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 역시 내 마음에 편히 머무르지 못했다. 남편에게 실망하여 다투었던 날, 화를 내며 울다가도 곧 개운치 않은 찝찝함이 뒤따라왔다.
‘지금 내 화가 아기에게 고스란히 스며들 텐데 어떡하지? 내가 이렇게 많이 슬퍼하면 아기도 뱃속에서 편히 못 있을 텐데... 미안해, 아가야.’
꼬물꼬물 움직이는 배를 쓰다듬으며 미안한 마음에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화가 아무리 정당해도 결국 아기에게는 미안한 일이 되어버렸다.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표현하기 전에 서둘러 슬픔과 화를 봉합하는 날이 잦아졌다. 주저앉아 소리 내 울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날의 슬픔, 밤을 새워도 선연해지기만 하던 비참한 날의 분노,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 걱정, 원망. 그 모든 것이 내 것일 수가 없었다.
감정조차 자유롭게 느끼지 못하는 시간, 이리저리 떠다니는 생각조차 단속해야 하는 시간, 임신부의 시간은 통제의 연속이었다.
단 한순간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내 안에 살고 있는 작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그 힘으로 타인과 조화롭게 살아오던 나 같은 내향인에게 임신은 사실 너무도 버거운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