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웁다 #13
사람들은 왜 이리도 사랑에 목말라하는 것일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고,
진정 인간은 '사랑'의 동물이기 때문일까.
나는 사랑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굳이 '사랑'이라는 것은
남녀 간의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할 대상은
너무도 많은데,
굳이 나열하자면,
하늘이나 바람이나
지금 내 곁에 앉아 있는 동료들이나
이 모두가 사랑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대상들이다.
그런데도 굳이 매일같이
드라마나 광고나 책들이나
이 모든 것들이 내내 '사랑타령'을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삶 자체가 이미 사랑할 대상들로 가득 차 있는데
왜 허구한 날 사랑 이야기만을
그토록 갈구하는 것일까.
그것도 꼭 남녀 간의 사랑만을!
왜 남녀 간의 사랑만 사랑이고,
유독 인간이 갈구하는 대상으로 낙점된 것일까.
언젠가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유달리 지금의 우리 사회가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그 사랑이라는 것도 다른 일면에서 보자면
어쩌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었다.
사랑하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하면
무엇인가 문제시되는 인간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또 지고지순한 사랑만이 최고의 사랑인 것처럼,
그렇게 사회와 문화가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누릴 수 없는
'아름답고 극적이고 낭만적인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를
매일 같이 그렇게 만들어내고,
우리가 우리 삶에서 그것을 구현할 수 없을 때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그렇게 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동안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십 대 시절에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다.
정신적인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속적이고 타락한 사랑이란
추잡스러운 인간의 한 단면이라
확언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이만큼 살아오고 보니
‘사랑'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점점 더 어려운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사랑이라는 게 별로 그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만나서 좋은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사랑이라 믿으면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그 사랑이라는 감정 이외에도
많은 것을 이유로 결혼하게 되고 살아가게 된다.
그뿐이다.
살아가는 것은
정말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족과 함께 좋은 감정을 나누고,
나쁜 감정으로 투닥이고 그러는 것처럼
사랑도 그렇게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항상 좋은 것이다라고 표현하는
저 누군가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사랑이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친구와의 사랑, 자식과의 사랑, 부모님과의 사랑,
자연과의 사랑 그런 사랑에
더 많이 매료되었던 사람이다.
내가 하는 공부도 사랑의 감정 없이는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 찬미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하는
가정에서 하는 말이다.
사람들이 묻는다. 사랑해 본 적 있니?
그렇게 묻는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사랑해보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대체 뭘 대상으로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지
그 대상의 범위가 너무나 협소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친구가 말한다. 다시 사랑하고 싶다고.
다시 할 말이 없다. 뭘 그렇게 또 사랑하고 싶냐고.
지금 내 삶도 사랑하는 것들 투성이어서
바쁘기만 한데,
그리고 왜 사랑이 꼭 남자여만 하냐는 말이
굴뚝같은데...
어차피 그니와 나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니
그런 문제들로 격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니.
다시? 나는 '다시'라는 표현도,
‘사랑'이라는 표현도
별로 문제 삼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저 내 삶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일 뿐이다.
나도 역시 내 삶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내가 죽어 사랑을 남기지도 않을 것이고,
사랑 때문에 내가 남아있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사랑할 준비'같은 것은 해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지금처럼,
나의 부모님과 나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내 동료들을 배려하고
내 삶을 위해서 나를 가끔씩 껴안아주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삶이고,
또 사랑이라고 굳이 표현하라면 그러하기 때문이다.
설령, 또 사랑하는 것이 없다면 어떤가.
그런 사랑 없어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 많다.
사랑이 없으면 삭막하지 않으냐고 묻는데,
그런 사랑 없어도
따뜻하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사람들 참 많다.
사랑'이란 굳이 거창하게
떠들어댈 필요도 없는 것이고,
사랑만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이 글을 쓴 까닭이
‘사랑'을 부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니?'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일 뿐이다.
2008. 8. 8.
2026. 3. 31.
저 때 얼마 있지 않아 친구는
다시 사랑을 찾아 떠났다.
그녀에게는 하루하루가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는
매 순간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게 안타깝기도 했다.
열일곱부터 사랑했던 나의 친구
바보 같은 말이긴 했지만
우정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 여긴 나에게
친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 버렸다.
내게는 사랑할 대상이 여전히 많았다.
자식과 부모님, 내가 하는 일들.
긍정적으로만 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아프고 힘든 시간을 껴안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라 믿었다.
그렇게 18년의 세월이 차곡차곡 쌓였다.
사랑이란 별다른 게 아니었다.
마주하는 사람이든, 대상이든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사랑이었다.
아름답든, 그렇지 않든
인생은 변함이 없고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
나는 그것을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 믿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