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웁다 #12
십 대의 날들과 이십 대의 날들,
그리고 삼십 대의 날들을 이어
내가 지속적으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내가 왜 그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지
솔직히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냥 그럴 뿐이다.
한 번도 내게 마음을 기울여주지도,
또 내가 그렇게 그에게 애정을 표현한 것도 없는
그런 사람.
하지만 인생에서는 알 수 없는,
또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일까.
목말라했던, 눈물이 났던
그러한 감정도 지나가 버리고
이제는 어느새 그저 그를
그러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산다.
항상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가슴 한 구석이 끊임없이 저리게 하는 바보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을 내가
마음 깊이 참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그렇게 말없이 인정하고 산다.
원망하고 미워한 시간은
오해의 골만큼 깊고 길었지만,
그 미움의 시간들조차
내게는 사랑의 한 방편이었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를 사랑한 만큼 미움도 커서,
그를 미워한 만큼 도망치고 싶어서
어리석게 선택하였던 또 다른 남자는
내게 두 아이를 남기고 떠났다.
떠났다... 아니, 내가 떠났다.
견딜 수 없어 내가 떠났다....
사랑할 수 없는 남자를 선택한
비참하고 불행한 결과는 모두 내게 남겨졌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이제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였고,
또 그로 인해 상처받아서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선택해서 불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두 아이의 어미가 된 사람이다.
이것이, 나의 삶이라면,
또 내가 이끌어온 삶이기에
나는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그의 블로그에서 오늘은 한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두 아이의 어미가 된 옛 애인'이라는 글귀.
그것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만약 나라면...
나는 그에게 애인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까.
그런 물음이 생겨났다.
‘두 아이의 어미가 된 옛 애인'
나이건 내가 아니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가 써 놓은 그 표현으로 인해서
나는 문득 쓸쓸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두 아이의 어미가 된 옛 애인'이라는 의미로
남아 있을까.
나를 그렇게 여기는 이가 이 세상에 있을까.
‘옛 애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씁쓸하고 아린 그 느낌은
내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지나간 시간.
옛날은 흑백사진처럼 몽롱하고 흐릿할 뿐.
그리고 그만큼 눈물이 어릴 뿐.
한 남자의 지어미는 되지 못한 채
두 아이의 어미가 된 나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쓸쓸하게 웃음 짓는다.....
2008. 6. 27.
2026. 3. 24.
열여덟 소녀의 마음을
복사꽃 빛깔로 물들였던 소년은
이십여 년 동안 여러 차례
내 삶을 지나갔다.
저 때도 나를 많이 흔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아이는 메일도 보내고 엽서도 보냈다.
요즘은 무슨 책 읽고 있어?
늘 같은 물음…
그 물음을 생각한다.
난 무얼 읽어야 하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내 삶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그것이 나의 답이었다.
가끔은 궁금했다.
저 아이는 내게 어떤 사람일까.
인내심을 시험하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존재.
누구나 그런 사람이 있다.
특별한 사연이나 이유가 없어도
불쑥 가슴 안에 들어앉는 존재.
지금에서야 답을 하자면
그 아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인간의 불가사의한 감정을
건드리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