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40
지난 몇 주 동안
정신적인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의 험한 말과 그 상처는
깊은 수렁으로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잘못되었단 말인가?
나의 삶이, 나의 현실이
그토록 누군가에게 지탄받을 만큼
저열한 것이었던가
자괴감이 나를 한없이 몰아세웠다.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왜, 왜, 왜 하는 의문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러다가
한 엄마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연예인 C가 자살하였다.
두 아이를 남겨 놓고서.
그 연예인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냥 연예인이라고만 생각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가 두 아이의 엄마임을
너무도 잘 아는 까닭에,
그녀의 죽음은
그저 한 여자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을 전해 들으면서,
그것이 남의 일인 양 생각할 수 없었다.
한동안 그녀와 내가 동일시되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이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 어린아이들을 어찌하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마감했단 말인가.
엄마가 되어 본 자는
엄마이기에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어떤 험한 공격이 있어도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온 세상의 전부니까....
세상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만
아이들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키워갈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세상이 없어져버리면...
아이들의 상처는
누가 치료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없다... 결론은 없다.
나 역시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지금의 나이가 되도록
잊을 수가 없다.
그저 덮어 놓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뿐이지,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항상 이를 악물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정말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하고,
건강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엄마도 한 사람이다. 한 여자다.
엄마임을 잊어버릴 수는 없지만
그 역시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그 존재의 슬픔을. 그것은. 어찌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그녀를 애도하지만,
그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에
더 아픈 것이다.
엄마.
엄마. 죽지 말아요.
2008. 10. 8.
2026. 4. 15.
젊을 때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버텨야 한다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엄마 되기는
최고의 목표였고,
살아있는 엄마가 되는 것은
최저의 기준이었다.
부모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것은
인생에서 잠깐의 시절이다.
그 시절 동안
부모로서 빛나기가 참 힘들다.
인생의 긍정적인 표본이 되어준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늘 기준을 낮춘다.
적어도 자식에게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말고 살자.
하지만 그조차 힘든 날들이 있다.
인간이라는 것이
참으로 나약하고 허술한 존재임을
자각한다.
부모라는 것이
되기는 쉬우나 결코 가볍지 않음을
생각한다.
짧은 산책을 하는 내내
H의 꿈을, 열정을, 기쁨을
응원한다.
아들은 지금 빛이 나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 반짝임에 감탄하고
그 열정 어린 눈빛에
지지의 뜻을 전했다.
자식은 나로 하여금
다시 젊은 인생을 살게 하는 존재.
목표가 바뀌었다.
그래, 이제는 응원한다.
나는 너를 무한히 응원하는 존재.
남은 삶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