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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탱고 Dec 17. 2022

탱고 수업 6

 서울의 고속버스 터미널은 경부선과 호남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거리상으로 빠른 걸음으로 가면 5분 거리지만 헤맬 수 있으니  착각했을 때 10분도 장담하기 힘들 수 있다.


 같은 지역 도착지이라도 승차위치가 다를 수 있는데 대전의 경우 대전 복합터미널로 갈 때는 경부선을, 유성으로 갈 때는 호남선을 타야 한다.


 나 역시 처음 한 두 번 살짝 착각하고 허둥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일 없다. 그런데 꼭 한 번은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아저씨, 21분 차도 있나요. 이건 20분 차인데 이거 타면 되나요?"


 대부분 1~2분 차이로 경부와 호남선 차량이 배차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거의 십중팔구 승차 지역의 혼돈이다.


 "이건 호남선으로 가야 해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는 아주 난감한 경우다. 10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충분한 시간이지만 헤맬 경우 차는 머뭇거리지 않고 떠나버릴 것이다.


 "놓치는 것 아냐?"

여자 친구인 듯한 한 명이 묻자 남자 친구가 뛰면서 소리쳤다.

"10분이나 남았어. X 같은 소리 말고. 뛰어"


 나는 남자가 내뱉은 센 소리에 승차하다 말고 놀라 뒤돌아 보았다. 남자는 뛰고 여자는 멈춰 있었고, 잠시 후 뒤돌아 본 남자가 멈춰진 여자 쪽으로 다시 뛰어와 손을 잡고 뛰려고 했지만 있는 힘껏 남자의 손을 뿌리치는 여자.


 그 이후의 상황은  승차 후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분명 21분 차량을 놓쳤을 것이다.


 호남선으로 가는 길에서 헤매다 버스를 놓친 게 아니라 서로에게로 가는 길에서 헤매다 서로의 마음을 놓친 것이다. 마음을 놓친 그들의 오늘 여행은 계속되었을지? 여행도 서로의 마음도 다 부수어져 버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상처로 남을 것이다.


 탱고를 춘다는 것도 여행과 같다. 수많은 변수 속에서 두 사람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이란 '스스로 만든  부족함'이라 생각한다. 편안하고 안정된 일상을 벗어나 수많은 부족함을 하나씩 해결하거나 받아들이면서 조금 더 성숙해지는 시간. 그래서 연인과의 여행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 된다. 어렵고 힘들 때 서로 부딪히고 싸울 수도 있지만 서로의 마음을 더 채울 수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찢어지거나 더 성숙한 사이가 될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탱고를 추는 사람 중에 혼자 걷는 것이 어려운 사람은 거의 없다. 뒤뚱거리든 총총거리든 쩍벌이든 안짱이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여 자신의 스타일(습관)대로 걸어간다.


 그러나 탱고는 서로 마주 선채로 누군가와 함께 걷는 춤이다. 익숙하지 않은 걸음으로 누군가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니 수많은 변수와 난관이 찾아오게 되고 그 순간마다 함께 추는 누군가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채워주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좋은 여행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것이 완벽해야 좋은 탱고가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순간이라도 서로에 대한 마음, 존재에 대한 존중심을 놓지 않는다면 수많은 부족함 따위는 그리 힘든 방해 요소가 되지 않는다.


 말 한마디로 상처 주지 말자. 말 한마디에 자신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나에게서든 상대에게서든 부족함이나 불편함이 느껴진데도 이겨내거나 견디거나 받아들이면 된다. 그 어떤 어려움도 시간이 지나 보면 평범해지거나 편안해진다.


 마음을 얻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 마음을 잃는 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래서 마음을 담은 따뜻한 말 한마디는 소중하다. 그것이 뱌로 여행이든 탱고든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체크하고 다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준비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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