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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탱고 May 08. 2022

탱고소셜 2.

탱고 in 분노

1988년, 그 당시 광풍적이었던 PC열기에 힘입어 컴퓨터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용돈벌이로는 꽤 괜찮았고 그 돈으로 편안하게 친구를 불러 호프집에서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고 당구장, 볼링장을 오가다가 또 클럽에서 또 술을 마시곤 했다.  불확실한 미래, 하루하루 혼돈이 가득했지만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없었던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마흔 때부터는 먹고살기 위하서는 어떤 일도 안 하겠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굶어 죽겠다고 했고 내 나이 50이 되면 세계를 떠 돌다가 어느 낯선 공항에서 잠들 듯 죽을 것이라 했다. 그러다 단 한 편의 영화로 인해 꿈을 꾸기 시작했고 아무런 경험도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그 꿈 하나를 가지고 영화인으로 살기고 결심했다.


그렇게 꾸었던 꿈이 불나방의 타 버린 날개처럼 꺾여 버린 10년 후, 나는 그리 슬퍼하지도 않았던 것 같고 마지막으로 찍었던 영화 필름을 오래된 여관방 구석에서 술이 취한 채 손가락 서너 개에 상처가 날 만큼 정신없이 가위로 잘라 버린 그날의 기억의 주체는 내가 아닌 듯, 어차피 그냥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될 만큼 절망의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절망이 너무 커서 분노가 일어날 힘조차 없었던 시간들. 그러다가 만난 것이 바로 탱고였다.


까를로스 선생님과의 한 시간 강습 동안 동의를 구하고 6미리 캠코더로 촬영을 했다. 분명 난 배워도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고 녹화한 테이프를 돌리고 돌려 보면 될 것이라 기대했었지만 100번을 더 보아도 보아도 그가 나에게 알려주고픈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탱고를 어떻게 추어야 하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분노가 일었다. 밤새워 테이프를 돌리고 돌려 보아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수학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심정이 드디어 분노로 바뀌었던 것이다. "술 한잔 사줄래요?" 그날 밤, 가까운 클럽에 들렸을 때 접근해오는 한 여성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돈이 충분히 없었고 알량한 자존심에 내 술은 내가 마실 테니 너의 술은 네가 마시라고 했다. 그 여성도 어쩌면 나처럼 오늘 하루 분노를 느끼고 그에 대해 공감할 친구가 필요했던 건 아녔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조차 지금의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담배만 연이어 피우다 숙소로 들어왔다.


다음 날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을 했다. 전시장으로 가기 전에 호텔 로비에 들려 선생님 연락처를 주면서 통화를 부탁했고 오늘 저녁에 다시 시간을 잡을 수 있는지 물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쉬는 8시 이후에 만날 수 있음을 확인받고 다시 개인강습 시간을 잡았다. 문제는 나에게 더 이상 여유돈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전시장에 가서 클라이언트인 담당자에게 200달러를 빌렸다. 그 때 나는 조금은 미쳐있었기에 그로인해 만들어 진 두번째 탱고 레슨이 내 인생에 결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전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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