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삶이란 편리하지만 무채색 세상이다. 희황창란한 네온사인은 눈부시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 빛은 인공 감미료의 맛이 난다.
이런 세상을 살다 보면 으레 우리는 한 번씩 광막한 초원의 푸르름을 그리게 된다.
"니네 이모부는 농막인가 뭔가 해서 신났다."
어머니는 스마트폰으로 이웃집 아주머니와 대화하듯 열띠게 말하셨다.
"농막이요?" 나는 의외라 생각했다.
내게 이모부는 도시에서 자라서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상이다. 농막 하는 배경 속에 그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그리는 것은 어떤 구도도 내게는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 우리 동네에서도 저 쪽으로 깊이 들어가서 사람도 없는 곳에 지어 아주 난리다. 산골짜기에 신선처럼 앉았다."
현대인이 하룻밤에 도인이 될 수 없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모부의 농막은 때마침 완성되고 그곳의 생활이 익숙해지셨을 때 이모께서 같이 가보자고 하셨다.
사실 고향도 시골 농촌인데 여기서 더한 곳이면 좁다란 길 하나 있는 산속에 묻히는 것인데.....
어머니의 강권이기도 하고, 나도 궁금증이 일어 먼 길을 지나 농막으로 가봤다.
길은 협소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가는 길에 운전이 미숙한 이모의 차는 고랑에 빠져 우리는 움직일 수 없었고, 한참 씨름해 겨우 농막에 도착했다.
이모부는 끝이 날카로운 긴 호미처럼 생긴 농기구를 들고 비탈길을 내려오고 계셨다.
"왔는교."
말수가 많이 없는 이모부는 짧은 인사를 했다 우리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는데, 그 뒷모습이 평온해 보이면서 소중한 물건을 숨긴 아이 같았다.
나는 포장되지 않은 흙 길을 밟으며, 짙은 초록의 잎들 사이로 불어오는 산바람을 느끼며 걸었다
산 중턱쯤까지 가니, 중간에 농막이 있었는데 평탄화시켜 정리된 바둑판같은 땅에 잘 기른 작물들이 힘차게 서 있었다. 아래로는 계곡물이 있었는데 그 시린 물소리가 청신하게 울렸다.
둘러보며 구경하다 나는 이모부에게 물어봤다.
"이모부 사람도 많이 없는데 저기 초록색 울타리는 왜 치신 겁니까?"
이모부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답했다.
"저 계곡물에서 뱀이 올라오드라."
아. 저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의 위험을 막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을 저지한다는 것이 퍽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한참 여기저기 자란 식물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이모부가 손짓으로 우리를 부르더니 조그만 컨테이너로 만든 집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자 이모부는 색소폰을 입에 물고 산울림 같은 소리를 내며 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의 옛 모습으로 돌아간 선비 같았다. 어쩌면 이모부가 산으로 간 것은 벗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모습으로 돌아간 것일까?
나는 연주 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보니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 있는데 묘한 통일감 속에 안정되어 있다. 자연은 의미를 가지고 생겨나지 않지만 어느 것 하나 무질서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자연을 저렇게 홀로 마주했을 때 진정한 세상에 선 순간일까? 나는 이모부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진정한 실체를 본 것만 같았다.
이모부는 시간이 아직 이른 데도 빨리 내려가라고 하셨다. 왜 이리 급하게 가라 하냐고 물어보니 해가 조금만 떨어져도 세상이 어두워져 길 찾기가 힘들단다.
자연에 취한 우리가 그렇게 쉽게 갈 수 있겠나. 이리저리 자연을 즐기다 보니 이모부 말처럼 금세 날이 어두워졌다. 나무에 걸쳐 있던 그림자가 길어져 산 전체를 덮은 것만 같다
우리는 밤 같은 저녁에 이른 별들을 보며 내려왔다. 다른 세상 같은 자연 속에서 오직 고요한 평온만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