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브런치에서 불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 좌절하면서도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는 지겨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리운, 교복을 입던 시절이었다.
우리 반에는 그런 친구가 있었다.
늦게까지 공부하지도 않는데 시험만 치면 만점, 그야말로 전국 1등.
주변 친구들이 볼펜똥이 손가락에 덕지덕지 묻을 때까지 공부할 때,
그 친구는 한숨 자고 일어나던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손에 볼펜똥을 묻혀가며 열심히 공부할 때,
그 친구는 학습계의 ‘화이트 칼라’처럼 깔끔하기만 했다.
잠 오면 자며 컨디션 관리한다고 했고,
내심 다들 부러워하던 아이였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한 날짜는 떠오르지 않지만,
따뜻한 햇살이 창을 뚫고 스며들듯 들어오던 느낌만은 어제처럼 선명하다.
그날, 나는 집중도 안 되고 졸음이 쏟아져
잠깐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왼쪽으로 허리를 돌리자 자연스레
대각선 뒤쪽에 앉아 있는 그 1등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얼마나 편안해 보이던지,
마치 제사라도 지내듯 책 한 권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손에 펜도 쥐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쟤는 참 세상 편하게 산다.’
그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잠도 깰 겸, 나는 그에게 다가가 뒤에서 책상 위의 책을 들여다봤다.
언어영역 문제집이었는데, 답 체크도, 필기도 없었다.
심지어 줄을 그은 흔적조차 없어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뭐 하냐?”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공부하지.”
“그게 공부하는 거야? 책이랑 눈싸움하는 거지.
그냥 펼쳐놓고 뭐 하는 건데? 문제 푸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그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생각 중이야.”
“무슨 생각?”
그리고 그는 짧게 툭 던지듯 답했다.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본 말이었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릴 때가 있다.
세월이 훨씬 흘렀는데도,
그가 내 옆에서 속삭이듯 말하던 말투까지
마치 화인(火印)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 중이지.”
이 일화는 내가 글로 몇 번이고 적은 적이 있다.
살면서 정답처럼 떠올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 문제만 푸는 게 아니다.
그 원리는 사람과의 만남—소개팅, 미팅 같은 관계에도 통한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다.
이기적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가지고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기 때문에
‘나’에게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나다운’ 정답을 떠올린다.
하지만 역으로 타인의 생각을 파악하는 능력이
세상을 더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앞서 말한 친구는 그 방법을 터득해
수능에서 거의 만점을 받고,
국내 대학을 아이스크림 맛 고르듯 취향대로 선택해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건 공부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원하는 바를 잘 캐치할 수 있다면
이상형과의 만남을 이어갈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나는 브런치 작가 승인에 실패한 뒤
혼자서 ‘브런치가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브런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들은 개성 있는 글을 원하지 않을까?
글을 엄청 잘 쓰는 사람을 찾는다면
신춘문예에서 작가를 구하면 될 것이다.
결국 다 같은 글이 아닌,
자기 삶이 들어 있는 이야기를 선호할 것이라 생각했다.
브런치는 ‘누구나’
(물론 최소한의 자격은 필요하지만)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이다.
사람으로 치면
잘생긴 사람보다
‘생긴 그대로 매력적인 사람’이면 충분한 곳이다.
그렇다면 개성 있는 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글에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에세이에서 개성을 가지려면 특별함이 필요하다.
평범한 우리에게도 특별함이 있을까?
이 글은 마흔 이후 브런치에서 독학으로 글을 쓰며 출판 제안을 받고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를 출간하기까지의 과정과 기술을 솔직하게 나누는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