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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Nov 25. 2022

당신이 모르는  당신에 대해 말하다.

나를 찾는다는 것

"나를 찾고 내 모습대로 살아가라."

데일 카네기의 책을 읽다가, 예전 지인 생각이 났다.


"효롱씨. 저 지영(가명)씨. 포기했어요 진짜."

지영씨 사수가 머리를 박박 긁으며, 고개를 떨구고 다가왔다.

나도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저 푸념이 이해 가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도 지영씨는 얀 피부에 까만색 정장이 잘 어울리는 단정한 외모에 딱 부러진 여성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완벽할 수 없듯이 그녀도 딱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좋은 말로 하면 개인주의, 하지만 보통  다들 그녀를 좀 이기적인 사람이라 평했고, 혹자는 도록 피해야 하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효롱씨. 저 책 좀 한 권 빌려주실래요?"

나는 점심에 도서관에 자주 갔다. 그것을 아는 지영씨는 가는 길에 자신의 부탁을 는 것이다.

빌려간 돈을 돌려 달라는 것 같은 당당한 목소리.  다른 이가 본다면 상사의 명령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별일 아니니 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들었다. 과연 그녀는 무슨 책을 읽으려고 할까?


"네. 괜찮아요. 무슨 일로 책을 읽으시려고요. 처음 부탁하시는 것 같은데요."

"아. 네. 이제 좀 바뀌어 보려고요. 안 되겠어요."

이런저런 일들이 있으니, 그녀도 뭔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책 좀 빌려주세요."

그녀는 분홍색 메모지에 이쁜 글씨로 책 제목을 적었고,

난 그녀의 결심에 기분 좋게 메모지를 낚아챘다.


나는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내가 아는 책이면 이야기라도 나누려 했는데, 메모지를 받자마자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읽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책에서 전달하는 메시지와 지영 씨가 전달받으려는 메시지는 다를 듯하다.

"효룡 씨. 이제 좀 이기적으로 살고 싶어서요. 책 좀 읽고 변고 싶어요."

왜인지 모르게 신길동 매운 짬뽕에 캡사이신을 뿌리던 유튜버가 올랐다.


수류탄 안전핀을 제거하듯 조심스 물었다.

"아... 그래요? 왜 갑자기 그래요."

"아니요. 제가 너무 호구 같아서요. 이젠 세상을 좀 이기적으로 살 거예요."

난 이제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누가...

그러는데요?"

"친구들이요. 아니, 절 아는 사람은 다들 그렇게 이야기해요. 제가 생각해도 저 완전 호구예요. 맞아요. 세상은 너무 착하게 살면 안 되는데, 제가 아직 어려서 몰랐어요."

그녀의 하얀 얼굴에 떠오르는 붉은빛 열기가 게까지 닿을 것 같아 급히 자리를 피해 도서관으로 갔다.


지영씨는 왜 자신은 호구라는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을까

난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첫째. 영씨와 다투기 싫아하는 착한 친구들이 그녀에게 듣기 좋은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이야기한다는 지영씨 말을 생각해보면, 그런 소수 절친만의 이야기는 아듯했다.


그래서 바로 두 번째 경우의 수를 생각해봤다. 지영씨 본인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집단 안에 꽁꽁 갇혀 있을 가능이다.


지금은 "메타"라고 사명을 바꿨지만 예전 페이스북은 미 의회에서 말 그대로 난타당한 적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페이스북 콘텐츠 알고리즘을 통해 온라인상의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해왔으며, 이는 정신적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다.

사실 페이스북만 그런 게 아니고 유튜브도 AI를 통해 내가 원하는 영상만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선택이란 미명의 강제적 시청을 하게 만든다. 이는  심리학적 용어로 확증편향을 강화시키는데 ,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을 계속 전시키는 것다.


문제점은 이런 확증편향이 내가 좋아하는 영상에 그치지 않고, 연대성을 가진 사람들로 일종의 인간 군락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지영씨도 이기적 인간 군락에서는 실제로 일개 호구로 불릴 수도 있는 것이다.

기사의 사회면을 보면 극단적 온라인 커뮤니티가 컴퓨터 밖으로 나와 인간 군락이 되어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이 또한 이런 연장선에 는 것이다.


"나를 찾고 내 모습대로 살아가라."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내가 찾았던 "내"가

사실은 나만 찾고 싶었던 "내"가 되면 안 된다.


나를 찾고, 내 모습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편한 나만 찾고, 나만을 위한 모습으로 살면 안 된다는 말이다.


지영 씨를 회상하며,

나도 쉽게 찾은 인스턴트식 같은 "나"보다

듣기 싫은 말이지만 들으려는 열린 마음으로,

오랫동안 끓인 뚝배기 같은 진정한 "나"를  찾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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