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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25. 2022

이 글은 당신이 꼭 읽어야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나쁜 말 내게 하지 마"

난 화났다. 지금 나는 떨어지는 태양이요 휘몰아치는 폭풍이요 내리꽂는 벼락이다.

그렇다 해도 난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이건 당신이 읽어야만 하는 글이다.

행복한 사람이 말하는 행복에 관한 이야기니까.

행복은 인생의 모든 것이라 생각해서 제목을 사뭇 대담한 말로 표현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을 최고의 선이라 칭했으니 행복에 관한 내 생각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최근 생각건대 행복은 과학보다 종교에 가깝다. 더 정확히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그 말은 교회나 절에 다녀야 한다는 말이 아니며 나 또한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종교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 말했다.

과학은 진리와 이해에 대항 열망을 철저하게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창조됩니다. 그러나 그 감정의 원천은 종교의 분야에서 파생됩니다.

과학조차 감정의 원천을 종교에서 찾아온다. 그러니 행복이란 감정은 사실보다는 종교적인 것이고, 자비 혹은 사랑 등의 감정이며 그것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은 과학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믿음이라 생각했다.


나는 화를 자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것은 화를 내기는 한다는 말이다.


며칠 전 일이다.


나는 크게 화가 났다. 모든 화가 그렇듯, 감정은 큰 사건보다는 작은 말들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시든 꽃처럼 걸어왔다. 그녀의 눈빛은 겨울밤보다 칠흑 같았다. 안다. 그녀는 오늘도 몹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욌을 것이다.


"오빠 오늘은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아?"

그녀는 만나자마자 준비된 투사처럼 말했다.


"고생했어.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난 이미 눈치챘지만 모른 척 가방을 오른손으로 받아주며 물었다.


"진짜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한번 들어봐."

한참을 들었다. 그녀는 수많은 말을 했다. 그 말들은 하루를 채로 걸러 남은 가장 거친 감정의 알맹이들이었다. 힘든 이야기는 힘들다. 왜냐면 힘든 이야기니까.


누구도 장맛비처럼 지속되는 불평에는 젖어 지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난 스스로에게 말한다. 듣자. 듣자. 나는 그냥 가만히 들으면 된다. 하지만 조금 젖는 보슬비는 낭만이지만 겨울비를 계속 맞으면 안 된다. 너무 춥고 힘드니까


그래도 들어주려 했다. 그녀는 말함으로 스스로를 정화하는 것임을 아니까. 하지만 그 분노가 나한테 집중되었다. 나의 옷, 말투, 태도...... 등 사람을 욕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눈사람도 외설적이라 비난할 수 있다. 불평의 원투에 견디다 나에 대한 강력한 비난 스트레이트는 결국 내 평정심을 깼다.


"그렇게 나쁜 말 내게 하지 마"

나는 외치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도 흔하지 않은, 어면 처음 보는 모습에 눈이 땡그래졌다.

그러고 한참을 걷다가 가로등 아래에서 안아주며 화해했다.


하지만 화내던 순간에도 난 스스로 행복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표출의 순간이 필요했을 뿐이지 미움을 가지고 가지 않음을 생각했으며,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말은 행복한 사람도 가끔은 화내고, 슬퍼진다는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거기에 빠져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 감사하게도 그런 사람이고 그래서 난 행복한 사람이다. 보통 책을 보면 "행복을 찾는다"는 말은 많지만 나처럼 "행복을 찾았다."라고 하는 이는 드물다

사람들은 행복이란 것을 멀리 빛나는 별처럼 너무 거창한 무엇이라 믿는 것은 아닐까.

 난 단지 내 손에 들어가는 적당히 동그랗고 따뜻한 행복을 쥐고 있을 뿐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떠하랴.
난 이 손에 매끈한 돌멩이의 감촉이 너무 좋다.
이것은 나만의 보석이라 믿는다.
그래서 행복은 종교와 같은 갈래에서 나온 무엇이라 말한 것이다.



그래도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계속 행복에 대해 노력한다. 어쩌면 불행한 사람보다 더욱 뜨겁게 노력하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은 행복이란 것이 한번 닿았다고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것은 감정의 바다에 떠다니는 배와 같다. 계속된 노 젓기가 필요하다. 큰 머크컵에  따끈한 행복을 출렁일 정도로 담는다 해도 서서히 식는다. 계속 데우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보통은 공개적으로 행복하다는 말은 하기 힘든데, 내가 말한 이유는 행복에 대해 너무 겸손한 것은 오히려 손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나칠수록 좋은 것이 어쩌면 자신이 행복하다는 믿음일 것이다.


쓰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다. 글이란 익명에 기대어 스스로 미화시켰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실상은 다를 수 있다. 엄청난 싸움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 해서 힘들게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찾아가니, 어느 초딩 일짱이 눈을 부릅뜨고 날아 차기를 가르치겠다는 양일수도 있다


그래도 내 하찮은 행복이야기라도 좋지 않나

 난 격하고 엄하고 지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글에도 언제 애드립을 쳐야 하나 고민하는 희극인 같이 안달하고 있다. 이런 사람의 글 속에서 평온을 느끼기를 바란다. 허구 일지라도 불행 포르노가 판치는 세상에서 내가 쓰는 행복 드라마 한 편 정도도 나쁘진 않죠?


전 충분히 얘기했어요
다음에는 당신의 행복 드라마를 내가 한번 보기를 바랍니다.

슬퍼마라 그리고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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