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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20. 2022

현재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현재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나는 또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다


 스스로도 어려운 글은 싫기에, 이런 글을 적는 것은 내게도 어려운 숙제와 같아 지금도 퍽 망설이며 한 단어 "철학"을 적는 중이다.


보통 사람인 내가 갑자기 쭈뼛쭈뼛 철학에 관한 글을 쓰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철학에 관해 단지 어릴 적에 윤리 시간에 배웠고 몇 권의 책을 호기심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물론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당최 이해하기 어려워 흥미를 갖지 못했고 왜 읽어야 하는지...... 사실은 이 사람들이 왜 이 이것을 하고 이런 글을 쓴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보다도 어리석었던 어린 시절에는 그냥 '배부르고 할 일 없어서 생각이 많았나 보다' 는 게 내 결론이었다.



내가 서두를 길게 뺀 것은 나도 그만큼 철학에 문외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난 적이 아니요. 아군이다. 피아 식별을 바란다.


난 어설프게 가르치려 글을 적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신에게 심오한 무엇을 줄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야말로 나는 우리다.

그럼 저런 의도조차 없다면 당신은 왜 시간을 소비하며 이 글을 적고 있냐?

이렇게 반문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요......

......


굳이 생각해보니 그래도 이유가 두 가지 정도는 된다


하나는 살다 보니 유식한 척이라도 해야 될 때가 있더라.

내 생각을 말할 때 근거가 있어야 설득력 있다고 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철학자의 한마디만 더해주면 아무 말이나 대충 해도 그냥 그럴듯한 말로 들린단다. 그래서 읽기 쉬운 철학책, 특히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기초 서양 철학 같은 책을 구해 흩어봤다.

(그래도 무시하지 마라. 몇 시간 정도는 봤으니 능히 초등학생 정도는 열띤 토론으로 굴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철학이란 책을 읽게 된 계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이유다.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철학의 역사를 읽다 보니 철학이란 것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당연한 생각들이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가장 예전으로 돌아가서 상상해보자


처음 밀림에서 나무 티팬티만 입고 있던 우리는 철학 따위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철학보다 날카로운 것은 앞에서 자신을 덮치고 있는 맹수의 이빨 아니었겠는가?


그러다 고대 그리스 시대쯤 되니 걔 중에는 먹고사는데 걱정 없던 사람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럼 처음에는 뭐가 궁금했겠나. 바로 세상이다. 이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근본 물질이 있는지 호기심이 일었을 것이다. 지금 태어났으면 생수 광고 톱 모델이 될 터였는데 아쉽게도 조금 이른 몇 천년 전에 태어나 그 재능을 썩힌 탈레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상은 물로 구성되어 있다 말했고 다른 어떤 이는 불, 공기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생각하며 살았던 거다.


그렇게 이제 자기네들끼리 어느 정도 할 말을 다하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야  세상 구성 물질은 우리 지겹게 생각했다.

- 그런데 이상하네  이런 생각하고 있는 나는 뭐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며 인간 자체에 주목하게 되었고, 어느 날 동네에서 똑똑이로 소문난 소 씨 성을 가진 크라테스가 등장해서, 본격적으로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낳고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 등 다양한 모습이 되었지만,


결국 그 시대 사람들은 인간에 관한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게다


자 그럼 당신은 이제 눈치챘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생각, 인간에 대한 생각을 다 했으니 무엇이 남았겠는가. 인간은 이제 그 모든 것을 벗어난 신의 세계관이 넘치는 중세로 넘어가게 된다.

그다음은? 근대? 근대의 붕괴? 현상학? 실존주의? 언어철학? 포스트구조주의?


몰라

어렵고, 쓰기 귀찮다.  


사실 그것들을 쓸 필요가 없다

지금 내가 어설프게 고대 철학이니 중세철학이니 이야기한 까닭을 다시 되짚어보자.


나는 이후 철학은 더욱 세분화되고 과학과 전쟁이라는 인간의 대사건들이 생겨서 여기에  인간은 영향받고 철학이 생겨나고...... 등등 철학의 역사를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내가 굳이 고대 철학과 중세 철학까지 말한 것은 우주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빅뱅처럼 철학이 생겨난 게 아니라 철학 그 자체가 그 시대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그래 이제 거의 다 왔다. 그럼 이제 이런 궁금증이 들지 않나

철학이 그 시대의 당연한 생각이라면,

고대 철학과 중세 철학을 정의하듯


현재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철학의 무서운 점은 은밀한 강력함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생각보다 크게 삶 자체에 영향을 받고 있을 텐데 나는 현재 우리 생각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현재의 철학은 서로 싸우고 있는 중이기에 누가 승자인지 알기 어렵다. 나중에 가서 한 명이 남으면 알기도 쉽고 정의하기도 쉽겠지만 현재는 수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있으니 한 가지 특징으로 분별하기 힘들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김에 책을 찾아봤다.

인식하지 못했으면 몰라도, 인식된 순간 모른 척할 도 없는 불편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철학의 역사라는 책을 보니 연표 마지막에 싱어라는 사람이 나와 있었다

누구지? 당연히 엄청나게 유명한 철학자라는데 난 당연히 모른다


인터넷에 이름을 쳐보니

아래와 같이 나왔다.



뭐 앞서 말한 것처럼 문외한인 내가 오늘 하루 박식해질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현시대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조금이라도 알아보려는 노력 중인 것이다.


피터 싱어가 가장 영향을 떨치는 분야는 실천 윤리(practical ethics)이고 규범 윤리를 보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안에 적용시키고 있다고 한다.


현재 철학은 이전의 거친 장갑을 벗고 섬세한 손길로 동물을 보듬으며, 우리 사회에서 혹은 생활에서 혼란스러운 부분의 살 속까지 손을 넣고 있다.


그렇구나. 그래서 스위스에서 살아있는 랍스터로 요리를 금지하는 법이 나왔고, 낙태법 등 윤리적 주제들이 논쟁이 기사화 되었던게 이이유다!


우리의 시대는 이런 철학이 있고,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구나!


런 깨달음은 참 짧고 얇은 배움이다

생각이란  큰 나무가 있다면 나는 떨어지는 작은 낙엽을 잡았을 뿐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것도 오롯이 나무에서 나왔기에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난 읽고 나서야 생각을 아는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철학자의 이야기를 살펴보니 앞으로 규범 윤리가 더욱 일상으로 넘어와 여러 논쟁을 거쳐야 할 시기가 왔음을 느꼈다.


이 글은 내게도 책상에서 삐죽이 튀어나온 못과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실제 리얼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 수많은 작품 중 단 한편만 썼는데 그게 상실의 시대라고 한다. 어찌 보면 이 글은 노르웨이의 숲에 놓인 글 같다.


나는 이런 딱딱하고 결론 없고 감동 없는 글을 되도록 피하려 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철학자 들뢰즈 말처럼 영토화 된 삶의 양식에 나를 고착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적음으로 내 글의 탈주, 내 생각의 탈주 그리고 우리의 탈주를 위해 글로 굴을 파는 것이리라

(정말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존경의 박수를 한번 치고 싶다. 그대의 대단한 인내와 집중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상으로 나름 우리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알아보려고 한 개인의 의도가 몇몇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치겠다.


부모님이 자주 말씀하시던 장엄한 가르침이 떠오른다

효롱아

생각 좀 하고 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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