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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01. 2022

어머니,은행나무를 고발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나답게 사는 날

뽀드드득 뽁
뽀드드 뽀드드 뽁


"아이구야, 날씨가 사람 잡는데이. 억수로 춥데이."

빨간 노랑 원색의 누빔 패딩을 꽉 껴입은 할머니가

걸어간다.


추운 날씨 탓인지, 할머니의 잰걸음은 제법 빨라 금세 나를 지나치고 그래도 성에 안차시는지, 발걸음은 더욱 스피드화한다.


뽀드 뽁
뽀드 뽁 뽀드 뽀드 뽁뽁


빨라진 걸음에 맞춰 소리도 4박자에서 빠른 3박과 2박이 뒤섞여 8·10박자로 절름거렸다.

여기저기서 2cm 남짓 되는 은행 열매들이 작은 지뢰처럼 터진다.


"추잡하데이. 으이그 냄시야 냄시."


이제는 제법 먼 곳까지 할머니는 걸어가셨지만 갈라진 듯 조금 새된 목소리가 거리를 울렸다.


틀린 말이 아니다. 어제 출근길만 해도 얇은 점퍼만 걸쳤는데, 오늘 퇴근길은 그냥 계절을 건너 띄웠다.

이 정도 추위를 갑자기 맞이하니 몸도 몸이지만 아직 마음준비되지 않은 것을 느꼈다. 우리가 겨울을 대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 두꺼운 외투만은 아니구나


뽀드드
뽀드드 뽁


바닥을 본다. 낙엽이 떨어져 깔린 거리를, 은행까지 껴서 누워 있다. 모양은 눈 감아주겠지만 코까지 막을 수는 없다.

언젠가 구정물을 밟고 빨려고 벗어둔 것을 잊었다가 꺼낸 양말 냄새가 난다. 윽. 고린 발 냄새.

한방에서는 백과라 하여 진해·거담 등의 효능이 있어 잦은 소변에 처방하며 자양제로도 복용한다는데, 도로 옆 가로수의 열매는 따가는 이도 없다. 그만큼 인간 편의를 위해 배기가스를 먹인 것에 대한 대갚음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선을 넘은 것이다.


우리네 인간도 동물에게 도를 지나치면 대하면 처벌을 받는다. 이건 그냥 자연이 행하는 인간 학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급히 거리에 쭈그려 앉아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보다 더 재빠르게 찍은 장면을 배경으로 짧은 글을 적었다.

글은 마음의 치료제라는데, 역시나 특효약이라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름 흡족한 마음에 가족 단톡방에도 올리고 집으로 돌아니 어머니께서 따스한 답변을 다셨다.


"아들아. 철 좀 들어라."


나는 얼마 전에 브런치에 직접 쓴 글이 떠올랐다

데일 카네기 자기 관리론 5장
 평화와 행복을 부르는 법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말라. 나를 찾고 내 모습대로 살아가라.

난 이런 어머니의 핀잔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그런 소리를 듣고, 또 좋다고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좋다.

철이 좀 안 든 것 같아도 이런 내가 내 모습이 아닐까.

나는 어머니께 다시 조용히 답신을 보냈다.


"어머니. 제가 요놈 경범죄 3조 노상방뇨로 고발하고  오겠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께서

스마일 이모티콘을 보내셨다.


어머니도 사실은 핀잔하셨지만 이런 아들이 그냥 싫지는 않으신 것이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철든 누군가가 되기보다 철이 좀 안 든 온전한 내가 좋다.

어찌 알겠는가.

그렇게 살다 보면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언젠가 떡상하는 날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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