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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23. 2022

이 세상, 호구가 살아가는 법

어. 어이 어이. 당신

...... 그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혹시 옆에 누가 있나?

혼자야? 확실해?

확실하냐고! 그래도 불안해

혹시 모르니 지금 보는 스마트폰 화면 잘 가리고 봐줘


내가 이렇게 은밀하게 말하는 이유는 세상의 큰 비밀을 눈치채 버렸기 때문이야. 이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 서지. 그 조건이 뭐냐고? 흠흠..... 갑자기 물으니 당황스럽지만 잘 대답하는 게 내 말을 입증하는 것이니 말할 수밖에 없겠다.

맞다 가 호구라서다.

소개가 끝났으니 내가 어렵게 알아낸 세상의 비밀을  말해주지


세상사람들은 주머니 속에 다들 하나쯤 호구 레이더를 가지고 다닌다.



지하철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노래를 듣고, 나는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고 있다. 저 앞에 형광색 점퍼를 입은 나이 든 여성분께서 어미 미어캣이 되어 꼿꼿한 자세로 연신 두리번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나 순간 직감했다. 아주머님 호구 레이더 on


띠띠띠 탐색되었습니다. 이 근방 호구는 당신입니다.


아주머님은 거침없이 나에게 온다, 하필 나에게로.

이 정도야 괜찮다. 기분 좋기도 하니까. 누군가를 돕는 것은 좋은 것인데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서 나의 하루 선행포인트를 1 적립시키니 좋은 일이다.


지하철을 내리고 카페나 가볼까 하고 조금 긴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온다. 오후의 밝은 빛이 나를 비춘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호구레이더가 켜지며 나는 광선인 건가? 의자가 편한 카페를 찾는 나에게 또 사람이 걸어온다. 기적이다. 이 많은 인파를 가르며 모세처럼 딱 나에게 일직선으로 오다니! 나는 선택받은 사람인 건가. 구도자처럼 한참을 걸어온 그가 나에게 말했다.

"도를 아십니까?"

이제는 익숙하니 고심해서 연습한 필살 반격기를 꺼낸다.

"죄송합니다. 교회를 다녀서요."

솔직히 내가 뭐가 죄송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죄송하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재빨리 카페로 들어갔다.


왜 나는 호구일까? 내가 범의 아가리를 가진 입담이 있어서? 내가 위기에 처한 사람처럼 보여서?

솔직히 스스로는 잘 모르겠다. 본인이 호구면서 왜 호구인지 모르는 게 원래 찐 호구 특인걸까


내가 부드러운 인상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살집이 있어 사람을 편하게 하는 풍채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러나 평소 '순하다, '는 말은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알리가 없으니,

나에게는 뭔가 호구스러움의 아우라가 감도는 가보다.


더 어린 시절에는 호구의 탈주를 꿈꾸기도 했다. 어디 나가서 딱 뒤통수 맞기 좋은 아들이라는 어머니의 격찬에 뭔가 변화를 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남들이 다 하는 흔한 거절이나 내 생각을 말하면 결과가 오히려 씁쓸했다. 누군가는 화내고, 누군가는 울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내 기분도 좋지 못했다.


불혹을 넘기고 다시 생각해 봤다.

호구의 삶이 내 삶이구나


정말 호구스러운 생각인가. 하지만 살아보니 호구의 장점도 여러 있더라. 물건을 살 때 따지지 않고 편하게 빨리 살 수 있고, 세세한 불평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지도 않는다. 또한 내 주위에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는 분에 넘치는 좋은 사람이 있는데 그들 또한 호구인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호구는 이렇게 사람과 쉬이 연결되고 편히 세상을 살아간다.



나는 행복하다. 그게 호구라서 행복한 건지, 행복한 자가 호구가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호구의 삶도 썩 나쁘지 않아요!

이건 일종의 호구 예찬론인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가족은 안 읽으면 좋겠다. 그러면 또 이런 격한 칭찬을 들을지 모르니

으이구 이 호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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