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롱이 Dec 19. 2022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불행한 사람 이야기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 내려오기 시작할 때쯤,  분홍과 반초,둥둥이를 포함한 8명리에 앉았다. 효롱은 큰 통창을  뒤로하고 제일 끝에 자리잡고 한눈에 회원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 독서모임 시작 전에 제가 퀴즈를 내보겠습니다."

사뭇 장난기 어린 눈빛이었다.


"오. 좋죠. 효롱님. 상품도 있나요? 저는 뭔가 걸려 있어야 타오르는 사람인 것 아시죠? 기대하겠습니다."

반초는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답하고, 옅게 미소 지었다.


"당연하죠. 정답을 맞히시면 정답 상품을 그대로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지났으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반필드가 한 말 입나다.

악마이며 불이며 천국이며 지옥이다. 쾌락과 고통, 슬픔과 후회가 거기에 함께 살고 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반초는 단번에 효롱의 의도를 파악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아 너무 어렵네요. 이번 퀴즈는 분홍님이 맞춰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잘 아실 것 같아서요."



나의 오른쪽 의자에  앉아 있던 분홍이 펜을 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어깨가 결린 지 가볍게 어깨를 이리저리 돌렸다.

"오늘 발제에 사랑이 들어가죠?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될까요? 방금까지 진료를 하고 왔더니 정신이 없네요. 아직 독서모드 스위치 온이 안되었더라도 이해해주세요."


"네 맞습니다. 분홍님에게는 사랑이라는 정답을 맞히셨으니 순수한 사랑 한 조각드리겠습니다. 너무 좋은 상품이라 부담스러워하셔도 환불은 안됩니다.

그럼 오늘 해운대 독서살롱 모임 책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인 것은 아시니까 따로 설명 안 드릴게요. 다들 책 읽는다고 고생하셨습니다."



난 생각한다. 책이란 것은 일방향의 소통이라고.

독자는 치열하게 작가의 의도를 살피지만, 그에게 질문을 던질 수는 없다. 그래서 모임을 같이 하면 좋다. 개인들의 의견일 뿐이라 작가 의도와 방향성이 다소 달라지더라도 대화가 가능하니까 소통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대화의 주제가 발제가 되기에, 모임에서는 발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독서모임은 마치 발제가 한 명의 인간이 되어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고, 이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는 시간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의 발제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책에서 질문은 사람이 되고, 점차 모습이 명확해진다.


오늘의 발제님은 생기 있게 웨이브 진 단발머리고, 나이는..... 흠..... 이제 갓 30을 넘었을까? 큰 눈에 사람의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왜인지 그녀의 눈동자는 아래를 향하고 있으며, 자리로 향하는 걸음걸이는 우아한 듯 하지만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책에서 사뿐히 걸어 나와 모임의 중간 자리 정도쯤 되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발제님인 그녀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일단 저는 아시다시피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왔습니다. 어릴 적 고향은 카사블랑카이고요. 많은 이야기와 발제들 속에서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제 고민을 여러분에게 바로 들려드리겠습니다."



"네. 우리들이 듣고 진지하게 고민해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최대한 그녀가 얼지 않도록 따스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통했을까. 그녀는 나를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재차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결혼을 일찍 했습니다. 그이는 미국 사람이었죠.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치인으로도 명성이 있어, 해외출장이 잦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러니까 7년 전이죠. 그는..... 외교차 해외로 갔다가 고인이 되셨습니다. 그이를 적대 하는 테러라고 하더군요"

그녀는 이 말을 할 때 고운 미간이 살짝 접히고 볼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는 가녀린 주먹을 꼭 쥐며 말을 이었다.


"슬펐죠. 그래서 무작정 떠났어요. 그냥 탈출하듯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멀리 떠나 있고 싶었어요. 저는 여기 와서 얼마나 저 바다를 보며 울었을까요? 눈물조차 마를 때쯤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어요."


이 이야기가 나오자, 둥둥은 올게 왔다는 듯 눈을 조금 더 동그랗게 뜨고 귀를 기울였다


"그는 정말 순수했고 정말 나를 사랑했죠. 슬픔의 만병통치약은 사랑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행복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 그는 하늘색 풍선을 들고 나타나 빛나는 반지를 주며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그 결혼식이 바로 내일입니다"

분홍은 그녀를 보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같은 여자의 직감으로 안 것이다. 분명 다른 사연이 더 있을 것이라는 것을.


발제님인 그녀는 잠시간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하얀색 상의 아래쪽에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손에는 예쁜 별이 그려진 편지봉투와 분홍색 문에 두 남녀가 그려진 청첩장이 들려 있었고, 조심스레 책상 위에 놓았다.


하나의 편지와 하나의 청첩장. 그 둘은 서로 노려보기라도 하는 듯 보였다.


"이것은 어제 온 편지입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전남편이 기적적으로 생환을 했다 하네요. 그리고 한국에서 제 이야기를 다 들어 알고 있다고 합니다.

7년간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하더라고요. 그는 그런 사람입니다. 자기보다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죠.

제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따를 것이라 하더군요."


그리고 편지 봉투를 열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내일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을 보냈더군요"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고 한숨을 쉬며 잠시 숨을 골랐다. 반초님은 생수를 따 컵에 담아 그녀 앞에 내밀었지만 그녀는 생각에 빠져 물 잔조차 보지 못한 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말이에요. 알아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불행한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만난 가슴 뜨거운 그도 똑같은 말을 했어요. 7년 동안 나를 지켜준 그가 살포시 안아주며 말했어요. 다 이해한다고. 고생했다고. 정말 사랑하기에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 해요."

그녀는 청첩장을 갓난아기 쓰다듬듯 소중히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 부끄럽지만 한국에서 만난 그는 여기서 이름을 말한다면 누구나 알만한 기업의 오너입니다.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요. 그런 그가 누구의 평판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냥 제가 선택한다면 모든 것을 자기가 안고 가겠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슬픕니다."

결국은 맑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급히 깨끗한 티슈를 몇 장 꺼내서 그녀에게 주었

그녀는 티슈로 슬픔을 지우듯 닦았다


"저 죄송한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발제님은 누구를 더 사랑하는 것 같나요?"

분홍은 미안한듯 작은 목소리로 중요한 질문를 했다.


발제님은 눈동자를 사선으로 올리며 말했다.

"그게 사랑을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막상 정의하려니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전남편에 대한 감정은 뭐랄까. 존경? 그런 느낌이 강하고, 현재 그 사람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뭔가 빠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사실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둘 다 좋은 감정인데......너무 어렵네요. 마음은 저울이 없으니까요. 아니요 뭔가 눈금의 간격이 너무 커서 세세한 차이를 모르겠다는 말이 맞을까요....."


나는 말했다.

"발제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일 말씀을 끝으로 발제님의 대화는 마치겠습니다."


그녀는 알았다는 듯 허리를 바르게하고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여러분 정답이 없다는 것은 압니다.

저는 내일 비행기를 타야 할까요?

아니면 결혼식장으로 가야 할까요?

어떤 말이라도 듣고 싶어요."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아무 말이 없었고, 마치 침묵이 조명을 덮어 세상이 한층 어두워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사르트르의 말이 생각났다.

사랑은 육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 마음을 얻는 것인데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그의 영혼은 자유를 상실한다.

과연 정말 사르트르의 이야기처럼 사랑은 언제나 실패하고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일까?


과연 발제님인 그녀에게 더 좋은 선택은 무엇일까?


나는 커피를 한 모금을 쓰게 마신 뒤 회원들을 향해 말

했다.


"자 여러분 그럼 이제 발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