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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21. 2022

남편을 존경하지만 진짜 사랑이 올 수 있나요?

진짜 사랑? 가짜 사랑?

남편을 존경하지만 진짜 사랑이 올 수 있나요?


그녀가 물었다. 시린 눈물이 뜨겁게 떨어진다.

책장에서 시작된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을 가렸지만 살구색 피부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창밖에는 바다가 보이고 차가 다닌다. 방안에는 그녀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나와 함께 7명이 어느 절간의 수도승처럼 앉아있지만 그녀는 마치 보이지 않는 듯했다. 마치 외출한 부모님을 기다리는 아이같이 우리의 말만을 기다리며 침묵했다


가짜 사랑?

진짜 사랑?

그래 사랑


죽일 놈의 사랑

나를 살릴 사랑


어떤 단어가 이토록 획마다 붉고, 획마다 검을 수가 있을까



당신도 그런 감정을 느껴봤는가? 평소 자주 듣고 잘 알고 있다 생각한 음악이 있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제목을 물어보면, 아! 하고 입에서 말이 나올랑말랑 딱 떠오르지 않는 답답함. 깃털로 누가 내 얼굴을 간지럽히는 것 같은 가려움.



나는 그녀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먼저 사랑을 생각해 보고 제대로 알아봐야겠다

두꺼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본다. 싸각거리며 한 장 한 장 넘긴다.

시옷. 시옷. 시옷. 찾았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사랑의 정의를 읽고 난 후, 난 더욱 혼란에 빠졌다. 어떤 사람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 사랑이라면, 그녀는 남편과 그 남자를 모두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고 있다. 둘 모두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는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난 순간 부드럽고 딱딱한 운명의 촉감을 느꼈다.

결혼이란 것은 그 순간의 결정이구나

우리는 결혼을 사랑의 완성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선택의 완성일뿐이다.


그녀는 실제 지금 그를 더 사랑하지만 결혼을 선택할 중요한 시기에 (단지 이보다 덜 하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던 것뿐일 수도 있다.

이래서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결혼할 당시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어찌 당신이 있었을까?

결혼할 당시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그놈이 있었을까?


하지만 어른이 사랑을 구입할 때는 바코드를 찍는다

삐빅 책임입니다. 포장이시죠?

 영수증은 버리겠습니다. 어차피 환불 안됩니다


다들 생각만 하고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분홍은 허리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전 내일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분홍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왜죠?"


"사랑은 감정입니다. 남녀가 사랑을 시작하면 체내에서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 등 자극과 흥분을 통제하는 각성 호르몬이 분비되죠. 특히 페닐에틸아민 수치가 상승해 행복감이 올라가요. 여기에 도파민까지 분비되면 흔히 뜨거운 사랑이라 하죠."

분홍도 이런 재미없는 설명이 힘든 듯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며 말했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있어요 보통 2년에서 4년이죠. 지금은 발제님이 그를 더 사랑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럴까요? 과연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는 덜 했을까요? 제 말은 아직 사랑의 유통기한 막

바지에 있을 수 있는 것뿐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안정적인 선택이 나을 것이라 봐요."

난 생각했다. 딱 부러진 성격에 안전 지향주의인 분홍에게는 딱 맞는 답이다. 그것이 그녀의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발제인 그녀에게도 그럴까?


난 처음부터 정답이 없을 것임을 알았다.

사랑이란 문제는 ox퀴즈가 아니라 주관식이다.

딱 맞는 정답 중에 고르는 손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남자를 정말 더 사랑하고 지속될 수 있을지 없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인생의 수험생이라면 채점자도 자신이다. 각자가 맞는 답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녀의 정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둥둥이 다른 의견을 말했다.

"발제님인 그녀는 이미 남편과 이 남자를 잘 알고 있어요. 한마디로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경험해보니 이 남자와 더 잘 맞는데, 감정이란 게 보통 이렇다는 숫자가 그녀의 삶까지 알까요?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셔야 합니다. 괜히 다른 생각을 미리 한다는 게 사람의 문제인 거죠."

그 또한 맞는 말이라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에선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놈이랑 지겹게 살아봤는데 다른 놈 하고도 한번 재미있게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후 모두 걱정하는 마음에 많은 말을 했지만 사실 먼저 말한 저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에는 떨렸던 발제님인 그녀의 눈빛이 눈물로 씻은 듯 맑아졌다. 형광등에 드리워졌던 그림자는 사라지고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결심의 향기를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정리되었어요. 정답은 없지만 나다운 답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했어요."

그녀는 결심의 순간을 놓치기 싫은 듯 당당히 일어났다


그녀가 어두운 현관문을 열자 바깥의 맑은 공기가 들어왔다.

그녀는 걸어갔다. 우리는 내리쬐는 햇볕이 그녀의 등에 비치는 것을 바라봤다



위험하다면 그 선택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 선택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 위험한 것이다


난 나답게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마음 가는 대로 자신의 정답으로 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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