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둘째 아들은요
2019년 09월 26일.
선선한 가을에 태어난 아이는 큰 눈에 오목조목 정말 여자아이처럼 예쁜 아이다.
첫째 아이를 갖는 당혹함과 기쁨을 넘어서
둘째는 임신부터 준비된 마음으로 10개월은 보냈다.
가진통으로 18시간을 침대에 누워있었고 유도분만제를 2번 맞으며 고생했지만
마지막 아이라는 생각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상하게 감이라는 게 감지되었을 땐
아이가 심장을 약하게 뛴다는 사실을 알았고 회복 후 신생아실엔 나의 아기를 볼 수 없었다.
“이상해요. 제이름이 보이지 않아요.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보통 아이를 낳고 팔에 띠를 둘러준다.
‘000 산모 아이‘ 표시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산부인과 병동에선 아이아빠를 호출했고 다급함이 보였다.
내가 여쭤본 말에는 아무도 대답도 해주지 않으시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119를 타고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서울 중심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송된 이유를 말하자면
태어나자마자 심장이 약하게 뛰고 무호흡으로 신생아로서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온 것이다.
인큐베이터의 들어가기 위해서 일반 산부인과가 아닌 소아 중환자실을 가야만 했다.
아이는 그렇게 태어난 1일부터 병원에 입원을 했다.
원인은 ‘심방중격결손’
심장의 난 5CM가량의 구멍으로 숨을 쉬는 게 어려웠고, 14일간 인큐베이터에서 간호를 받고 퇴원했다.
아이가 괜찮아진 것 같았는데, 또 한 번 고비가 왔다.
아이를 본 남편이 예리하게 아이가 손떨림을 캐치한 것이다.
워낙 신생아이고 깜짝 놀람의 약한 아기들은 떨림이 간혹 있다는데, 이상함을 감지하고 대학병원을 방문했다.
두 번째 대학병원이다. 태어나자마자 소아중환자실, 떨림으로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방문.
병명은 뇌전증.
예전엔 간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뇌전증이라는 의학용어를 쓴다.
아이는 뇌전증 약을 꾸준히 먹게 되었다.
1개월 2개월 3개월 6개월 단위로 태어난 시점부터 아이는 뇌파라는 것을 찍기 시작했고,
나는 처음으로 아이가 아픈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감정을 격하게 공감한 순간이었다.
조기에 발견한 만큼 아이는 예후가 좋았다. 13개월 때 뇌파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아이의 심방결손도 주기적으로 검진 결과. 1cm가량 놔두고 닫히는 감사한 일이 일어났다.
‘정상 아이가 된 것이다.’
거기서 나는 아이의 성장 과정의 큰 결실과
앞으로 뭐든 잘 해내리라 생각했고
건강히 자라주기만을 바랬었다.
그렇게 어느 아이와 똑같이 평범한 시간이 흘러
아이가 3살 시점에 어린이집이란 곳에 보내고 일을 시작했다.
내게 찾아온 직업과 삶의 또 다른 활력을 얻은 듯이 기뻐서 두 아이의 양육의 어려움은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