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빛나를 내려놓기.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게만 집중해 보았다.
먼저 아이와 온전히 시간 보내기.
오후 1시에 픽업해서 아이와 자체 방과 후 학습을 했다. 산에도 가고 집 근처 공원서 공도 차고
놀이터 가서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상호작용 활동을 늘렸다.
그런데 왜일까? 아이와 함께하는 그 즐거운 시간이 점점 구렁텅이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보통의 아이가 하원하는 4시의 오는 여유로운 엄마의 삶을 잃었고,
이아이의 맞춤 세상을 받아들이는데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무발화 아이와 활동을 이어가는 게 엄마라는 역할을 떠나 즐겁지 않았다.
문득 한 인간의 삶이 아닌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책임감만을 남는 생활이 지속될까 봐 두려웠다.
정확히는 아이를 키우는 이 모든 행위를 포기하고 싶었다.
죽고 싶다고 까지 생각하는 1%의 나쁜 생각도 들었다.
아이는 점점 몸집이 커지고 성인이 될 텐데 과연 내가 평범하지 않는 자폐아이를 사회 구성원으로 키울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이아이와 한 몸으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혼자 깊은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 출구는 보이지 않고 어둠 컴컴한 만 가득했다.
우울증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아이는 점심시간에도 혼자 밥을 먹지 못한다.
포크로 고기를 쥐어 올리지만 밥과 반찬을 얹혀 먹는 게 힘들다.
처음엔 씹는 것도 어려워 계속 “씹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만든 밥의 문제가 있나 해서 여러 번 요리책을 펴고 못하는 요리라는 것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 아이는 구강이 예민해서 아무거나 씹지를 못한다.
흔히 말하는 맛있는 음식을 탐색하고 먹어보는 행위가 어려운 아이에게 밥시간은 곤욕이었던 것이다. 먹는 거에 흥미가 없는데 자꾸만 엄마가 다양한 음식을 내놓으니 아이는 점점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짓수를 줄여나갔다. 치킨너겟, 떡갈비, 삽결살 얇은 바로구이, 요구르트, 뽀로로 밀크맛
부드럽고 소금의 절인 자극이 있는 정말 손에 꼽는 음식들만 먹는다.
어쩌다 새로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볼 때면 누구보다 기뻤다.
새로운 음식도 지속적으로 먹지 못한다. 낯선 촉감을 받아들이는데 몇 배 몇십 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둘째를 낳고 외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우리 가족의 일상적 행복이 점점 사라졌다. 특별한 날 아니면 외식을 하지 않는다. 특별한 날조차도 배달음식으로 대체한 적이 있다.
아이와 함께 외출은 엄마에게 긴장감을 주었고,
시행착오를 지금도 겪고 있다.
넷과 함께하는 외출보단 내가 감당하며 나가는 둘만의 외출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자폐는 단순히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해서 이해하기에는 많은 것의 오류가 나타나는 병명이다.
전체적으로 인지, 지능이 낮다 보디 상황을 이해하고 이겨내고 인내하는 필터링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한참 걷고 한참 밖에서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는 외출자체가 점점 줄게 된다.
쓸모없는 소모가 하고 싶지 않았다. 감당이 되는 수준에만 외출을 감행했다.
아이는 다행히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걷다 보면 이아이는 한길 밖에 모른다.
여러 갈래의 길 중 색다른 길은 가지 못하고 두려움 마음의 팔을 끌어당긴다.
처음 안고 버스 탔을 때는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긴장을 많이 했었다.
혹여나 아이가 너무 울거나 예민하게 굴까 봐.
그렇게 나는 소극적이고 예민한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