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나에게 사랑은 언제나 구원과도 같았다.

by 수아

얼어붙을 듯한 추위에도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나의 열여덟 겨울, 학업에 몰두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한국의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엄마라는 커다란 짐이 있었다. 엄마는 나의 기억이 닿는 먼 시절부터 술을 마셨다. 많이, 그리고 자주. 일주일에 한 번이 서너 번이 되고, 매일이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만들며 몰래 한 잔이, 눈을 뜨자마자 마시는 몇 병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엄마의 구원이었을 술은 그녀의 삶을, 그리고 우리 가족들의 삶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술에 취한 엄마는 낯선 사람이 되었다. 소리를 지르며 폭력을 쓰고, 집을 엉망으로 만들고, 새벽에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겨울, 나와 아빠는 엄마를 찾기 위해 발자국 하나 없던 눈밭을 참 부지런히도 뛰어다녔다. 어린 나는 가끔 나를 차가운 새벽 공기로 몰아내는 아빠가 밉기도 했지만, 불만과 성가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아빠의 걱정 어린 표정을 목격할 때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빠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취미도, 친구도 없이 직장과 집만을 오가는 당신의 삶에는 병든 엄마까지 있었다. 내가 바라본 아빠의 삶에는 희망이 없었지만, 아빠는 나이가 더 들면 엄마와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는 소박한 바램을 버리지 않았다. 아빠는 이따금씩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그녀를 포기할 듯이 굴기도 했지만, 내가 엄마에 대한 험한 말이라도 내뱉는 날이면 단호하게 나를 다그쳤다. 나는 아빠의 사랑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겨울의 어느 날, 엄마는 결국 스스로를 다치게 했다. 서랍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뚝뚝 흘리던, 술 취한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바닥에는 붉은 액체가 흥건하고, 엄마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손바닥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걱정보다 화가 앞섰다. 엄마의 망가짐이 우리 가족 모두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는지. 나는 이를 악물고 구급차를 불렀다. 태어나서 처음 구급차에 몸을 실으며, 엄마와 내가 모르는 사이였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차 안에서도 난동을 부리는 엄마에게 애써 시선을 주지 않았다.


30분정도 지났을까, 병원 의자에 앉아 있던 나의 눈에, 울 듯한 표정으로 달려 들어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퇴근하고 바로 달려온 아빠였다. 이번에도 아빠의 표정에는 역시 성가심과 분노 같은 건 없었다. 아빠는 휘청이며 응급실로 들어가더니, 곧 치료를 마친 엄마를 데리고 나왔다. 셋이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며, 나는 내가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겉옷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버린 시간들 덕에 집에 가면 할 일이 밀려 있었다. 억울함이 밀려와 앞서 가는 엄마를 쏘아본 그 순간, 아빠가 자신의 코트를 벗어 엄마의 어깨에 걸쳐 주는 모습이 보였다. 혹여나 엄마가 사라질까, 엄마의 어깨를 감싼 아빠의 손에는 어떠한 간절함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잠시 멍해졌었다. 아마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고마워하기는 커녕, 다음날이면 또 신경질을 부리고 술을 마실 것이다. 아빠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엄마는 당신의 삶의 구원이었던 것이다. 다른 것 없이도 아빠를 살게 만드는, 아주 끔찍한 구원이자 삶의 이유. 엄마에 대한 사랑은 아빠의 삶을 망가뜨리는 동시에 계속해서 굴러가도록 했다. 그녀가 없으면 삶이 텅 비어버릴 것을 아마 아빠도 알고 있었겠지. 열여덟의 나는 사랑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외양부터 아빠를 쏙 빼닮은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법조차 닮아 있었다. 마음 속에 사랑이 자라기 시작하면 자의로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것이 삶의 전부인 듯, 미친 듯이 매달리며 모든 것을 꺼내어 바쳤다. 때때로 그 구원은 나를 삶에서 가볍게 들어 올린 다음, 아주 깊고 어두운 곳에 처박아버리기도 했으나,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영화를, 평안을 주던 친구들을, 나를 사랑하지 않던 연인을, 짙은 문학을 사랑했다. 사랑은 아주 간단하게 나의 삶을 가득 채웠다. 그 구원은 내게 아주 커다랗고, 간절했으며, 두려웠다.


최근 나의 삶에 오랜만에 구원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벅찬 일상을 보내던 와중, 엄마가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수술을 받았다. 일년 치 눈물을 쏟아낸 뒤에 정말이지 무너질 것만 같았던 그날 새벽, 나의 구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 주었다. 모두 내려놓고 싶었던 하루가 너의 안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편안히 막을 내렸다. 너에게 우리 아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의 어깨를 감싸던 그 날의 아빠 이야기를. 아빠의 사랑이 도대체 어떤 마음인지 가늠조차 안 간다고 말하는 나를 바라보며, 너는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 네 눈을 보며, 나도 아빠의 간절함을, 사랑을, 무모한 희생을 이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는 나에게 구원이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행과 고통이 너를 옆에 두는 대가라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다만, 너에게도 내가 괴로운 사랑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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