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백에 넣은 것보다 더 많은 것
내 골프백에는 나라는 사람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가끔, 아니 꽤 자주 다른 사람의 골프백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한다.
어떤 클럽을 쓰는지, 어떤 공을 쓰는지, 연습 도구는 뭔지, 먹는 건 뭔지.
그게 특별히 상대에게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단, 그냥 궁금한 거다. 나도 그렇고.
골프백엔 필요한 게 참 많다.
클럽은 기본이고, 비옷, 버기, 티, 디봇 수리기, 볼마커, 좋은 공, 주운 공, 소셜용 공, 연습도구까지.
그래도 누군가 좋은 걸 들고 있으면 "한번 써봐도 돼?"라고 묻게 된다.
관심 반, 호기심 반.
사실 쓰진 않지만 버릴 수 없는 물건도 있다.
각종 골프장에서 산 볼마커, 리미티드 공, 기념품들.
자랑하고 싶지만 내 방 서랍 속에서 고이 잠들어 있다.
내 가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언니가 선물해 준 두 가지다.
눈을 보호해 주는 선글라스, 그리고 손떨림 없는 거리측정기.
“이왕이면 제일 좋은 걸로 사줄게”라는 언니의 말처럼, 이 두 가지는 내 골프백의 포인트다.
없으면 공을 칠 수조차 없다. 캐디 언니가 없는 호주에서, 내 눈과 거리감은 이 아이들이 책임진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또 하나.
선크림과 모기 퇴치제.
어느 날은 티샷 하는데 모기 네 마리가 다리에 붙어 어드레스를 몇 번이나 풀었다.
나는 모기의 최애 메뉴니까, 이건 생존템이다.
가장 쓸모없지만 이상하게 버릴 수 없는 건, 퍼팅할 때 오른손 개입을 막는 연습기구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막상 필드에서는 사람들 눈치 보여서 못 꺼내게 된다. 괜히 너무 초보 같아 보이기 싫어서 그런가
비 올 때 쓰려고 산 비 장갑도 있다.
막상 비 오면 어디 넣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그냥 맨손으로 치게 된다.
호주머니가 너무 많아서 그런가.
내 가방에서 가장 오래된 건 드라이버.
거리가 긴 건 아니지만, 욕심부려 신형을 샀다가 헤드 무게에 낑낑대며
결국 다시 돌아온 타이틀리스트.
타구음, 타구감, 감성까지. 구관이 명관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참 실리적인 사람이다.
안 쓰는 건 빠르게 정리하고, 자주 쓰는 건 한 곳에 다 몰아넣는다.
주머니가 많아도 결국 쓰는 건 정해져 있고, 급할 때 찾기도 편하다.
무거운 백도 싫다.
가볍고 실용적인 것만 딱 넣는다.
연습기구도 그 스펀지 퍼터 연습기 하나뿐.
하지만 진짜 무거운 건 욕심, 목표, 자책, 분노, 같은 감정들▪︎▪︎▪︎
그걸 들고나가 새소리, 오리 소리, 동반자의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 돌아온다.
좋은걸 보고 듣고 느끼고 마음 가득 충전하고 온다고나 할까?
필요한 것만, 꼭 필요한 것만 담은 내 골프백.
그 안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를 만드는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를 파악하는 데 골프 한 라운드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골프백 속에 이미 그 사람의 모든 힌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