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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천사 May 17. 2024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자녀교육서 맞죠

지난번 박완서 님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이후,

꾸준히 아버지와 책으로 소통하고 싶었으나 눈이 침침해지셨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책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책을 선물하는 일이 혹여나 서평에 대한 의무감(?)으로 좋아하는 책이 부담이 되지는 않으실까 하는 마음에.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반가운 한마디.


요즘은 서평단 당첨 안되나 보네?


안되긴요. 아버지 눈 침침하시다셔서 전달을 안 드렸을 뿐입니다!!^^

그렇게 또 한 권의 책이 아버지께 전달되었다.

그 책은 바로 손웅정 작가님의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내가 읽다가 아버지께 건네드려서 끝까지 다 못 읽었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읽고픈 책은 아버지에게 먼저 건네드리는 습관이 생겼다.


아버지도 손웅정 님만큼 독서가에 메모광이셨기에 더 흥미롭게 읽으셨을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색 바랜 수첩이 수십여 권 있으시다.

아버지 60세가 되시던 그 해, 아니 70세가.. 아니 80세가 되시던 해에 꼭 그 수첩들 안의 글들을 엮어서 책으로 만들어 드리려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셨던 이유가 이제야 밝혀졌다.

다독을 하시며, 좋은 글귀는 수첩에 빼곡히 옮겨 적으시고는 거듭 읽고 또 읽으시며 딸들에게도 읽어주셨다.

읽어주실 때 그 초롱초롱한 눈빛은 마치 대여섯 살 아들이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모습과 닮아 있으셨다.


결혼하고 나서는 그 수첩 안의 글들이 더 궁금해졌고, 부처님 오신 날도 아버지를 만나러 갔더랬다.

그리고 아버지는 신나게 써 내려가신 서평 글을 너무 늦은 거 아니냐며, 내게 건네셨다.

이러니 내 어찌 아버지께 책 선물하는 즐거움을 놓칠 수 있으랴!


아버지의 손글씨를 그리워할 날이 있겠지.

그때까지 부지런히 아버지에게 책을 선물해 드려야겠다.




지난번 보다 조금 더 글씨를 반듯하게 써 내려가려고 노력하신 흔적이 귀여우시다.



손웅정의 독서노트


세계적인 축구스타 손흥민을 있게 한 배경에는, 그를 있게 한 아버지 손웅정이 있었고, 그래서 그의 존재와 할이 궁금하여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워한다.

외모부터 깡마른 근육질의 체격에다가 나름의 철학으로 고집스러운 셩격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

그런 그가 책과 가깝다는 사실이 놀랍다.

운동선수와 책,

이상할 것도 없지만 대다수 운동출신들이 책과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니까.

어쨌든 그는 아들의 성공과 더불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이제는 강연을 하고 다니며 자신의 소신을 펼치고 다니는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경구와 금언을 밑줄치고 옮겨 쓰는 가운데 자신도 풍부한 인성을 터득한 것은 다른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다 쓰고 버리는 것까지.


나의 경우에도 그랬다.

수십 년간 기록했던 밑줄 글 노트 삼십여 권을 어느 날 문득 일시에 버렸다.

바랜 노트가 먼지가 나고 다시 읽게 되지도 않아서다.

딸들이 책으로 만들어준다는데도 거부했다.


세상에는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수많은 글들이 넘쳐나는데

따지고 보면 모두 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내놓아

세상에 소음을 보탤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글귀의 정신을 머리와 가슴에 담고 따라 하려고 한 것만으로도 족한 것 아닐까 싶다.


손웅정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일치한 지점이다.

그가 인용하는 글들은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공감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주목되는 점은 그것을 실천해 가는 강한 의지력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직선으로 나아가는 그의 태도가 사람들에게는 부러워 보이는 면이 아닌가 싶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산전수전 겪으며 터득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무척이나 성숙되어 있다.

자녀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은 열망.

빚지면 남의 종이 되어버릴 것 같은 결의.

늙어서도 추하지 말아야겠다는 단호함 같은 것들이 체화가 된 그의 사고방식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느낌을 준다.


천문학적인 부를 소유한 아들 덕에 이제 호의호식하고, 세계를 주유하고, 저택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추측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인생과 자신을 갈라놓는 어른(?)스러운 품격의 소유자 손웅정.

그를 존경하고 싶다.


대담 형식으로 재미있게 진행한 김민정시인의 센스 있는 질문도 칭찬받을만하다.

그 덕분에 맛깔스러운 시간을 보낸 셈이다!!



얼마나 많이 읽어야 아버지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문득 아직 읽고 써주시는 아버지가 있어 감사한 날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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