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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허송세월>을 읽고

by 오천사 Mar 07. 2025

 



오랫만에 아버지께 책 주문을 받았다.

늘 이벤트를 가장한 핑계로 선물을 드리곤 했지만, 실은 결혼전 책 주문을 많이 해주시던 아버지였다.


같은 연배의 김훈 작가님의 <허송세월> 주문해달라고 하시는 아버지.

제목으로 와닿는 부분이 있으셨던 걸까.

내가 읽고 싶은 책 또는 아버지가 읽으셨으면 하는 책을 선물해드리는 맘도 좋았지만, 아버지께서 주문해주시는 책을 주문해드리는 기쁨은 더 크다.

서평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서평은 개학 전에 써서 올리려고 했는데,

개학을 앞두고 분주한 마음에 섣불리 함부로 써내려 가고 싶지않아 계속 서랍에 머물러 있던 글이다.


이제 개학을 했고, 다시 새벽 글쓰기에 도전하는 맘으로

오랫만의 공백을 깨는 글은 이 글로 시작하고 싶었다.


80살까지 살게 되는 어른들이 하는 생각은 어떨까.

감히 상상도 안된다.

30여년이 지나 노년이 된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허송세월>의 김 훈 작가님은 이 책 서두에 <늙기의 즐거움>에서 이렇게 남겨두셨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관성적 질감은 희미한테, 죽은 뒤의 시간의 낯섦은 경험되지 않았어도 뚜렸하다.

이 낯선 시간이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평안이나 불안 같은 심정적 세계를 일체 떠난 적막이라면 더욱 좋을 터이다.


사실 김훈 작가님의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고, 여전히 나는 지금 아버지가 읽으셨던 <허송세월>을 건네받아 읽고 있지만, 아버지가 읽고 느끼셨던 것들을 함께 천천히 읽고 느끼려 한다. 올 해 첫 책은 이 책부터.

(여기저기서 읽어야할 책들이 서로 나를 언제 읽어줄꺼냐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꼭꼭 눌러쓰신 아버지의 서평

김훈의 '허송세월'을 읽고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이들의 시선은 모두 비슷한가 봅니다.

호숫가를 산책하며 보는 노을의 풍경.

꽃과 새와 나무들, 벌레들까지. 관찰의 대상이 되어 사람을 사념에 빠져들게 하지요.

병들기 전까지는 모르고 잊고 지냈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지하면서는 감회도 많아집니다.

작가 역시 사람은 죽음 앞에서 겸손해지고 새로워짐을 이야기합니다.

화장장 소각로 창구와 엘리베이터 문안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의 자태가 겹쳐 보이기까지의 착각도 털어놓습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보이는 일상 속 부조리도 고발합니다.


내 새끼 제일주의가 끼치는 폐해

농탕치는 정치인들의 작태 등.


그런가 하면

술과 담배 끊기의 어려움

어머니를 수제비와 비빔밥에서 떠올리는 일.

새로운 세대 아이들에게서 보는 희망도 이야기합니다.


압권은 어린 시절 겪은 6.25 전쟁의 체험들 소개입니다.

군가를 부르며 성장한 아이들의 세계.

고아들, 소년거지들,

미군의 군화를 닦는 아이들.

피난길 열차지붕의 아이들.

아침이면 동네전체에 퍼지는 똥 푸는 냄새

군대 철모 속 파이버로 만든 똥바가지의 추억은 아련하기까지 합니다.

평화와 웃음의 주인공, 봉양 두 씨의 시조가 된 두봉주교의 소개도 정겹습니다.


통권속에서 보는 하나의 주제보다

산문 속에서 보는 다양한 주제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훨씬 더 공감이 가고 친숙하게 해 주어서

두 번 반복 읽었습니다.

가슴이 허기지고 출출할 때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사이에 끼워져있던 책갈피 같은 저기에 '다시 읽기'라고 써두신 귀여우신 80대 나의 아버지



다시 읽고 싶어 하시는 책이 많지 않은데, 이 책은 읽고 다시 돌려드려야겠다.


아버지의 세월은 결코 허송세월이 아님을 기억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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