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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아 Feb 06. 2021

계속 별나기

3.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해주기


이월의 첫 날. 부쩍 바빠진 애인과 비교적 한가해진 나의 일월은 주에 한 두 번 가량을 애인이 우리집에 오고, 다음날 늦지 않게 레슨이나 미팅을 가는 것으로 채워졌다. 때가 때다 보니 어딘가를 가기도 애매했고, 애인의 누적된 피로와 나의 금전적 궁핍은 누구도 갑작스레 어디를 가자, 무어를 하자, 라는 말을 입 안 어디론가 숨겼다(내쪽에서 유독 그런 것이 맞다.). 부쩍 등이 배기기 시작한 소파배드를 펼쳐 누운 채로 하찮고 귀여운 장난들에 서로 낄낄대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가난과 함께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불안과 훨씬 큰 무게의 고민을 짊어진 계획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상대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유독 일월에 애인과 있을 때 고마움이 격해져 울거나, 애인이 가고 난 하루의 반 이상을 여독 달래듯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낸 적이 잦다. 내일부터는 새 일을 시작한다. 지원해둔 일이나 잡힌 촬영도 조금 있다. 유독 짧은 달이기도 하고, 음력으로 따지면 또 한 번의 시작이기도 하니 어쩌면 해가 바뀌었을 때보다 좀더 의욕이 앞서는 기분. 그 하루 전인 지금, 까무룩 낮잠을 자고 일어나 할 일들을 죽죽 적어두고 몸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인생에서 평화로운 시간이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은 마냥 좋다. / 이번 글을 준비하며 받은 질문 중 일부


가끔씩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이용해 질문을 받고 답한다.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서 라이브 방송을 하기도 하고, 정보를 구하거나 공유하기도 한다. 모델일을 하며 꾸준히 키워온 계정에는 친구, 지인 (친구와 지인의 차이는 뭘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네.) 보다는 이 일을 하며 알게된 사람 혹은, 이 곳에서의 단골손님 같은 존재들이 더 많다. 내가 보이고자 하는 것을 추려서 올리는 곳이기 때문에, 내가 그들에게 어떤 방식이나 느낌으로 이해되고 있는 지를 문득문득 확인하기 좋은 공간. 모델로서 괴로운 유명세를 딱히 겪어본 적도 없고, 적당하고(보통은 조금 더 아쉽고 궁핍한 마음으로) 꾸준히 일을 하고 바라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반긴 것이 다여서, 다행히 겁도 크게 없다. 특히나 스스로의 색이나 삶에 대하여 고민이 생길 때나 그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 궁금할 때 사용하는 문답기능은 꽤 도움이 된다. 생각보다 예쁨 받고 산다는 생각도 들고, 하릴 없던 순간이 왠지 의미있게 채워지는 듯한 기분도 든다. 보통 무언가 고민스럽거나 잘 풀리지 않을 때, 보내온 답들의 결을 쭉 훑다 보면 서서히 마음이 좋아진다. 숨어있던 생각이 대답 사이로 삐져나와 알아서 정리될 때도 있다. 다양한 컨셉의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 했던 '제 어떤 장면이 저를 매력적으로 혹은 궁금하게 만들까요.' 라는 질문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꽤 여러 사람들이 보내온 답들을 보면서, 하나 둘 겹치는 이야기들이 곧 내 장점이라는 것을 알았고, 다양한 컨셉을 소화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시작하면서 그토록 고민하고 원하던 스스로의 색을 하나 둘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위로를 많이 받았고, 그날의 대답 하나 하나를 다이어리에 필사해두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든든한 집단지성의 느낌이랄까 ..


이 자리를 빌어 또 고맙다는 말을 .. 고마워요 고마워요

별난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가수의 말처럼, 별남과 특이함이  이상 주춤거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자주 불안과 막연 속에 빠져들더라도, 주변의 또다른 별나고 사랑스러운 것들로 얼마든 다시 일어날  있는 세상. 내가 고개만 돌리면 그런 것들을 찾기   수월해진 세상. 그런 세상이 꾸준하고 가깝게 다가오는  같아 자꾸만   살고 싶어진다.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해주어야 주변을 사랑할 힘이 생기고, 주변의 사랑도 기꺼이 받을 힘이 생기니까. 그러니까 나는   것이고,  사랑할 것이다.


글을 쓰는  이미 며칠이 꼬박 지났고, 이제는 이월의  날이 아닌 이월의  주말이다. 새로 시작한 일은 배울  투성이고 생각보다 조금 고되지만, 좋아하는 결의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을 조금  깊이 배워둘  있는 기회같아 기쁜 마음이  크다. (무려 라떼 아트를 조금씩 흉내내기 시작했다 .. !)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레  것을 찾는 모습과 모델 일거리를 알아보는 모습이 자주 겹치고, 그럼  고민이 앞서지만, 차차 적응해가며  맞는 방향을 찾아나설 것이다. 오랜만에 카페에 와서 글을 쓴다. 연희에는 얼마  독립영화관이 들어섰고,  옆에 작업하기 좋은 카페도 같이 생겼다. 생각보다 시끄러워 이어폰에 귀를 가둔 채로 쓰는 글이지만, 여러모로 평화로운 주말의 시작. 그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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