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닿아 Mar 11. 2021

빠듯한 다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4. 쪽글 한 묶음


01 빠듯한 다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왠만큼 잘 어울리지 않던 단어들이 서로 붙을 때 느껴지는 기시감을 좋아해요. 자주 붙어다니는 미사여구로는 표현되지 않는, 혹은 구태여 표현하고 싶지 않던 감정들이 자연스레 녹아납니다. 치열한 위로나 빠듯한 다정 같은. 또 실제로 그런 것들이 필요하기도 하잖아요.


02 말을 꺼낼 때 단어를 고르는 행위가 오래도록 습관이 된 것은 다정함을 맨 앞에 둘 때 생각보다도 꽤 여러 성가시고 무례한 것들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네는 저 역시 그런 것들을 피해 상대를 대할 수 있구요.


03 가끔 이유가 정리되기도 전에 울음이 터질 때가 있어요. (사실 제게는 대부분의 울음이 그렇답니다. 그 두 글자 속에 갑자기라는 말이 늘 암묵적으로 들어차있는 듯 하네요.) 감정은 분명한데, 원인관계는 순차적이지 않은, 어쩌면 인이 원을 순간 앞질러버린 것 같달까요. 누가 그렇겠냐마는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달갑지 않습니다. 그와 반대로 눈물이 많은 편이라 더 고역이구요. 그만큼 우는 연기를 잘하면 또 모를까. 상대가 울 것 같은 제 얼굴을 포착하는 일, 참는다고 애쓰다 마주친 걱정어린 눈에 무너져내리는 일은 몇 번을 겪어도 부끄럽습니다. 울음을 참는 순간에는 울음이 목이며 코를 꽉 막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그 압력이 생각보다 거칠고 넓습니다. 울음을 견디느라 몸 전체에 버팅기는 듯한 힘이 들어가거든요. 풍선에 테이프를 붙이고 바늘로 찔러 구멍을 내듯, 울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눈물을 조금이라도 흘리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몸에서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때 다치지 않도록 몸밖으로 무언가를 배출한다고 해요. 그의 대부분이 액체라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눈물이 울음을 흘려보내는 윤활제가 되는 일이 그다지 이상하지 않습니다.


04 종종 울면서 깨어나요. 꿈에서 울던 것이 현실로까지 올라와 흐를 때가 있더라구요. 올 봄에는 엄마가 우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전해들은 별일이 있던 것도 아닌데, 혼자 살면서 혼자 그런 꿈을 꾸었어요. 중학생 때는 가족의 형태가 바뀌는 일이 변하는 것보다 바스러지는 것 같게 느껴져서 참 공포스러웠던 것 같은데, 그저 사랑에 기반하여 시작한 관계가 사랑으로 인해 끝이 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나서부터는 좀 나아진 듯 해요. (이 말을 꺼낸 건 엄마가 우는 꿈 만큼이나 엄마아빠가 이혼하는 꿈도 자주 꾸었는데, 전자만큼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언제는 빗속에서 우는 엄마를 껴안고 같이 울다가 깨어난 적이 있는데, 그 채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점심 께에, 때아닌(울음에 때가 어디있냐마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를 듣고 엄마는 '너는 눈물연기 하면 참 잘할 거야.' 하셨습니다. (ㅋ ㅋ)


05 당연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섭습니다. 그만큼 내 속이 깊지 않다는 것을 자주 깨닫게 되어요. 당연한 존재가 생기는 것도 역시 무서워요. 빈자리가 크다 못해 원래 있던 게 떨어져나간 느낌이잖아요. 비워진 게 아니라 무언가 잘라낸 기분. 개인적으로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것만큼 상대를 가까이 생각하는 증거가 없다고 느낍니다. 작은 순간에 스치는 아쉬움을 발견할 때마다 상대가 마음 깊은 구석 가까이를 차지하는 기분이 들어요. 가까운 존재라는 빌미로 저지르는 것들이 쉽게 모난 모양이 되는 걸 보면 서운함이 드는 스스로가 밉기도 하구요. 어쩔 수 없는 애정의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습니다. 밀려오는 감정을 그대로 두고 애정 또한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어요. 매번이 어렵지만 그러고 있어요. 당신께 잘 느껴지고 있나요 ?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계속 별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