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배우다 보면 듣는 단어가 있다. 일본에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라는 것이 있다고. 혼네는 거짓 없는 본 뜻, 마음을 의미하고 다테마에는 인사치레나 겉치레를 말한다. 즉, 빈 말이다.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우리라고 마음을 다 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살면 속없는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뒷담화의 앞담화화를 추진하는 일을 저질러 버린다. 나도 사람이니 뒷담화를 하다 사람 좋은 속 없는 사람한테 당한 적도 있다. 그래서 빈 말을 배웠다. 그리고 그 빈 말은 일본과의 비즈니스에서 아주 중요하며, 여러 장면에서 많이 이용된다.
일본인과 일을 해 봤으면 항상 꼭 하는 말이 바로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이다. 우리는 보통 쓰지 않는 말이다. 정말로 신세를 지고 있을 때 말고는 말이다. 그런데 일본과의 비즈니스에서는 툭 하고 건드리면 나오는 말이 이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お世話になっております)'이다. (그리고 정말로 몸을 툭 하고 건드리면 '죄송합니다(すみません)'이 툭 하고 상대방 입에서 나올 것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신세를 지는가? 이 말의 주체는 회사다. 우리 회사가 당신네 회사와의 관계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원청과 하청의 따라 신세를 지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둘 다 신세를 지면서 도움을 받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전화가 되든 메일이 되든 꼭 쓰는 말이다.
이런 다테마에는 일본인 입장에서 보면 편한 말이다. 편리하게도 이런 말을 함에 따라 다른 말을 하기 위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전화를 걸고 말하는 "〇〇의 누구입니다.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난 뒤에 상대방도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면, '이제는 일 얘기를 해도 됩니다'라는 신호가 된다. 그래서 이런 다테마에는 언제 무슨 말을 해도 되는지 알려주는 지표와 같은 말로써의 역할을 한다.
그다음으로 많이 쓰는 말은 아마도 죄송합니다나 미안합니다의 뜻을 가진 말들일 것이다. 일본에 있을 때는 우스개 소리로 잘 모르겠으면 일단 사과하면 어떻게 된다라고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사회 초년생일 경우 사과의 말을 쓰거나 말을 할 경우, 자신이 마치 큰 문제를 일으킨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역할이 사과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면 되고 실제로는 상대방의 사과로 인해 일이 쉽게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서 사과는 거의 일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사과를 하게 된다. 답장이 늦어서도 죄송하고, 상대방을 번거롭게 해서도 미안하며, 일을 많이 시킬 때 조차도 미안해한다.
그래서 이 사과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도 볼 수 있다. 내 잘못을 가지고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곤란해할까 봐 선수 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원청에 해당하는 사람이 하청에게 '미안하지만 잘 부탁합니다'라고 쓰면 하청직원은 싫어도 해야 하는 그런 상황도 연출되는 참 재밌는 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많이 쓰는 '잘 부탁합니다'일 것이다. 보통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를 시작으로 끝은 '잘 부탁합니다'정도만 외워도 비즈니스의 기본 틀은 갖춘다고 볼 수 있다. 참으로 나를 낮추는 형식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항상 나를 낮추다 보니 내가 없어질 것 같이 느낄 수도 있지만, 직장에서는 개인보다는 회사라는 집단이 우선이라는 것이 비즈니스의 매너에서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잘 부탁한다는 빈 말까지 잘 구사해야 상대방은 정식으로 예의를 갖추어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쓴 세 가지 예는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조금이라도 일본과의 비즈니스 경험을 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이 기본적인 것에서 점점 심화가 되면 이런 것들을 뛰어 넘어서 더 큰 다테마에들이 지뢰밭처럼 숨어있다가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 기회에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할 기회를 가질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