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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막막한 나날들

by 다문 DaaMoon

눈을 떴다. 어두웠고 낯설었다.


‘맞다! 수술은?’


조심스럽게 손을 왼쪽 눈 언저리에 대어 보았다. 거즈인 것 같았다. 수술은 어떻게 끝났는가 보다 했다. 마침 인기척이 났고 간호사인 듯한 실루엣이 보였다. 그녀는 잠에서 내가 깬 것을 눈치챘는지 항생제를 넣어주겠다고 하며, 내 팔목에 고정되어 있던 링거 바늘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는 시력이 나쁜 오른쪽 눈으로도 알기 쉬울 정도로 큰 주사기, 내가 어릴 때부터 대빵 주사기라고 불렀던 그것을 연결했다. 그리고 마치 팔로 물을 마시는 것처럼 시원한 물길이 내 혈액으로 쏴하고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수술 결과를 그녀에게 물었다. 수술은 잘 되었다는 그녀의 짧은 대답. 배려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일단 마음이 놓이며 다시 잠에 빠졌다.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에는 환했다. 새벽에는 아직 마취가 덜 풀려서 몰랐지만 오른쪽 눈을 움직일 때마다 왼쪽 눈도 자극을 받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확실히 크게 다치긴 한 모양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담당의라고 자신을 소개한 안경을 쓴 젊은 남자 의사가 찾아왔다.


“수술은 잘 되었나요?”

“네, 수술은 잘 되었어요.”

“상태는 어떤가요?”
“저희가 수술을 할 때 수정체(렌즈)를 제거하고 그 과정에서 홍채도 일부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동공에 난 상처 3군데를 봉합했으며, 눈 주위에 난 상처도 다 봉합했습니다.”

“혹시 눈 뒤 쪽에도 문제가 있었나요?”

“아뇨, 안구 뒤 쪽은 문제가 없었고, 눈 말고는 주위 뼈나 뇌도 다 문제없었어요.”


다행스러운 내용에 안심했다. 하지만 이때는 수술이 잘 되었다는 사실에만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뿐, 나는 아직 내 상태를 몰랐다.


수술 후 첫째 날은 사전에 들은 대로 통증이 심해 진통제 두 알을 먹고는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중간에 잠에서 깨면 통증 때문에 눈을 뜨기가 두려워 그대로 눈을 감고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잠을 자는 것도 안 자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눈꺼풀 위를 뚫고 들어온 빛이 피부 속의 피와 합쳐 저 세상을 발갛게 물들였다. 무언가 편했다. 아마도 내가 무엇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어떻게 아셨는지 손님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퀸즈랜드 한인회 임원분 내외가 찾아오셨고 그 보다 더 늦은 시간에는 대사관에서 사건 사고 담당자라는 분이 찾아오셨다. 수술을 받기 전에 영석이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영석이가 여러 군데에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모두들 내 만신창이 같은 모습에 또 눈도 잘 못 뜨는 것에 안부만 살피고는 금방 자리를 떠나셨다. 다만 누가 나를 걱정해서 찾아온 것이 얼마만인지 그저 고마웠다.


입원한 지 3일 만에 퇴원 절차를 밟게 되었다. 거즈는 여전히 왼쪽 눈을 덮고 있었지만 통증은 많이 완화되었다. 단지 3일 동안 받은 의료서비스라는 이름의 남의 손길이 아쉬웠다. 떠나기 전, 담당의로부터 앞으로 받아야 하는 치료에 대해 안내를 받았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눈은 아물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요. 앞으로 시간을 두고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해서 상태를 봐야 합니다.”

“아물 때까지 얼마나 걸리죠?”

“최소 수개월 이상이 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일 년까지 걸리기도 합니다.”


일 년이라니. 상처를 입는 데는 1초도 안 걸렸을 텐데 치료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말에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비자는 일 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럼 눈이 아물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럼 눈에 실밥을 뽑고, 지금은 수정체가 없어서 상이 맺히지 않으니 인공렌즈를 넣는 수술이 필요할 거예요. 그리고 치료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각막이 많이 손상되어서 각막 이식을 받아야 할 수도 있고요.”


막막했다. 언제 치료가 끝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하필이면 다친 곳이 눈이었다. 망연해 있는 나를 보던 의사가 한 가지 희망적인 내용을 알려주었다. 나처럼 피해자 victim가 된 사람은 정부에서 치료비를 내어 주는 제도가 있다고 했고, 알아볼 수 있도록 명칭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다음 예약 날짜를 바로 잡았고 나는 병원을 나섰다.


인생의 베테랑이란 게 존재할지는 몰라도 베테랑이라면 바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해서 지혜롭게 대처를 했을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생각해 버렸다. 비자 문제, 치료비용, 캔버라에서 브리즈번으로의 이사까지. 무엇을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문제들. 그런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는 꽉 차있었지만, 나는 당장 일단 2주 뒤인 치료 때까지 브리즈번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캔버라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한 것은 이사 준비. 집주인을 만나서 자초 지경을 설명하고 방을 나가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집주인은 브리즈번에도 집이 있으니 괜찮으면 그곳을 써라고 했다. 단, 집에는 아무도 없으며 살림이 없어서, 불편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일단 집을 구해야 하는 압력에서 벗어난 것이 기뻤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었던 터라,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결정이 나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집을 정리하고 병원 예약일에 맞추기 위해 일주일 만에 다시 브리즈번으로 향했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지난번에 브리즈번으로 향할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집은 구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갈지 치료는 언제 끝날 것이며 비용은 어떻게 할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바로 ‘애써봐야 소용없으니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라’고 말해 줬을 텐데, 그때의 나는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꼭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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