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내 상황이 너무 일렀다. 이제 겨우 두 번째 수술을 받아 봉합 부분이 아물 때를 기다려야 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수술을 받아 나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니 그 뜻대로 내가 몸을 잘 보존하는 것만이었다. 각막을 이식하며 고정용으로 눈에 남아 있던 실밥을 뽑을 때까지는 4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고,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물에서 뭍으로 건져 주고 다친 곳까지 보살펴 주며 이제는 쉬어라고 말을 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가족에게 내게 일어난 일을 다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다 없어졌을 때 드는 생각이 있었다.
‘결국, 누가 나였을까?’
이상한 물음. 하지만 왠지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답을 했다.
‘나는 나를 착각했었던 것 같아.’
그때였다. 내 답에 대꾸를 하듯 머릿속에서 말이 들렸다.
‘그래, 맞아. 너는 진짜 너를 착각했어. 정말로 그 네가 진정한 너와 같다고 말이지. 실은 너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나는 나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진짜 나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몸과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와 진아, 혹은 Higher-self라고도 하는 나와의 대화였다. 나는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내가 아니었네.’
진아는 말했다.
‘너는 네가 입고 있던 옷을 진짜 너라고 착각했어. 원래 옷이라는 것이 너를 위해 입는 것이지만 어느새 너는 네 옷이 네 진짜 모습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했지. 그리고는 네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어.’
‘나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했지.’
‘그래, 그래서 너는 어느 순간, 네 옷이 되어버린 거야. 그리고는 이 옷을 어떻게 할지가 관건이 되었지. 그래서 밖에 보이는 모든 것, 직업, 경제 사정, 사는 곳 등등에 마음을 점점 빼앗겼던 거야. 그러면서 그런 외부 사정이 네 사는 목적이 되어 버렸지. 그러면서 진짜 너는 점점 무의식 속으로 남겨져 버렸지.’
그랬다. 그림자의 실체는 몸인데 그림자가 나 자신인 줄 알았다. 하긴, 거울 없이 우리가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힌트는 그림자를 보는 것이다. 그림자로 자신이 물리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고 그 색깔은 검은색으로 그 검정 속에 눈이 있는지 손이 있는지 발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시간에 따라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밤에는 주위 풍경에 녹아들어 가 버린다. 나가 다시 말을 걸었다.
‘너는 거울을 쓰지?’
‘응’
‘그 안에서 무엇이 보여?’
‘내가 보이지’
‘그 거울 속의 모습은 정말로 네 모습일까?’
‘그렇겠지. 2D 이긴 해도’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네가 거울로 네 모습을 보는 것과 남의 눈으로 보는 네 모습은 어떨까?’
‘왠지 다를 것 같은데?’
‘그래 다 다르게 보는 것이지. 너는 거울로 네 얼굴을 보지만, 아주 주관적으로 보게 돼. 마치 네 목소리를 녹음하고 들을 때 꼭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끼 듯, 네 필터를 통하게 되어. 마찬가지로 남이 볼 때는 어느 정도 객관화는 되지만 그것도 그들의 필터로 너를 보게 되어 어떤 이는 호감을 가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비호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
‘그럼, 내 진짜 모습은 어떻게 알 수 있어?’
‘결국에는 아무런 도구 없이, 필터 없이 보면 보이게 되지.’
‘?...’
알 듯 모를 듯했다. 진아는 내 생각을 다 읽고 있는지 힌트를 주었다.
‘너는 이 도구 없이, 필터 없이 너를 보는 것을 했지. 기억 안 나?’
그러고 보니 마음에 떠 오르는 것이 있었다.
‘기도하다가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된 적이 있었지. 놓아버렸다고 해도 나를 포기하거나 세상에 대해 체념이 아니라, 그런 생각까지 다 밖으로 날려 보냈을 때였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모든 생각의 족쇄에서 풀려났지만,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이 아니라 더 편하게 지금 있는 곳이 더 안정적으로 해 주는 느낌? 그런 것이었어.’
‘그때 느낀 감각이 바로 네가 나로 돌아왔을 때야. 너는 더더욱 나가 되지 않았어?’
‘맞아. 나는 순수하게 나였어.’
무언가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사고 후, 아니 일본을 떠날 생각을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하나의 큰 흐름이었고 그 흐름의 끝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시작된 진아와의 대화. 돌고 돌아서 찾은 것은 결국 나였다.
이 대화를 내가 사고가 나기 전에 들었다면 어땠을까? 이 모든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까? 하지만 대답은 ‘노’인 것 같았다. 경험을 통해야만 했다. 모든 것은 필요한 것이었다. 그중에 싫었던 것(대부분이었다), 좋았던 것 등등의 경험, 그중에서 없어도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모든 조각들이 다 맞춰졌을 때만이, 큰 그림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한 깨달음이 있고 난 후, 일이 되려고 하면 그냥 둬도 되는 것인지, 피해자 보상금의 결과도 나왔다. 수술에 든 의료비용이 나왔고 그 덕분에 생활비에도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정말로 돈 걱정 없이 치료만 잘 받으면 되기까지 형편이 나아졌다. 그제야 나는 심리학자의 상담을 받아 볼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꼭 한국어나 일어 등 내게 쉬운 언어에 고집을 피울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와서 정신학자를 만나볼 생각이 든 것은, 상담을 통해 치료를 받는다던가, 아니면 더 큰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들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또한, 심리학자를 만나도 된다는 조그만 자신감이 생겼다고 할까? 그래서 피해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심리학자와의 상담을 신청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저는 심리상담자 멜린다라고 해요. 자기소개를 해 줄래요?”
백인의 중년 여성이 내 상담사로 배정받은 것 같았다. 근 몇 달만에 만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참만에 쓰는 영어에 불안감이 있었지만, 별문제 없이 내 소개를 마쳤다. 그러자 개인 정보를 써내는 종이를 건네주며 일단 멜린다는 방에서 나가서 나를 혼자 있게 해 주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온 멜린다는 날씨 이야기부터 해서 내가 사는 곳, 호주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느냐 둥,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물어봤다. 나도 상대방이 심리학자라고 하지만, 처음 보자마자 이제까지 있었던 일이나 내 개인사를 밝히는 것에는 주저함이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멜린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저도 호주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미국에서 왔어요.”
예전이라면 호주나 미국이나 캐나다나 영국이나 였지만, 이제는 상대방이 이민자라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꼈다. 언어의 문제는 없다고 해도 말투에서 호주와 미국은 다르니 외지인이라는 것을 현지인들이 알아차렸을 것이고, 문화가 다른 문제 등 아무리 미국인이라 해도 적응하는 데는 힘든 점이 있었으리라. 남편은 호주 사람, 그리고 자식이 있고 심리학자가 된 지 몇 년째 등등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멜린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친근감이 생겼다. 첫 번째 상담은 자기소개만 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되어 다음 주에 상담 예약을 하고는 그날은 헤어졌다.
두 번째 봤을 때는 좀 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멜린다는 이번에는 청자의 입장에 충실했다. 그렇다고 하지만 사건보다는 호주 생활 자체에서 외국인으로 겪었던 어려운 점들을 위주로 말을 했다. 언어 문제, 취직 문제, 그리고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까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이 되었던 것 같다. 그녀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한 마디로 정리를 해 주었다.
“당신은 열심히 살아왔어요. 매번 매번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음.. 그런가요? 저는 다들 저 정도는 다 하고 그 이상으로 열심히 살아간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그 생각을 바꾸어야겠네요. 당신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상태에서 열심히, 최선으로 살아왔어요. 남이 당신보다 더 잘하는지 열심인 지는 우리는 알 수 없어요. 그냥 그렇게 보일 뿐이고, 그것도 다른 사람의 삶의 정말 단편적인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 말이 맞다면, 왜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되었을 까요?”
“그 대답은 내가 해 줄 수 없지만, 결과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내가 살아온 삶이 다 부정되어서는 안 돼요. 생각해 봐요. 지금 결과를 모른 채,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요?”
내 대답은 “아니요”였다. 이렇게 될 줄 알면 다른 선택이겠지만, 미래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때는 내가 최상의 선택을 했다고, 모든 것을 검토하고도 그런 결론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경험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는 운명론적인 결과였다.
나는 낯가림은 심하지 않지만 항상 세 번은 만나야 마음을 열 수가 있는 성격이었다. 결국 세 번째에 근 1년간 겪은 사건에 대해서 입을 뗄 수가 있었다. 일련의 사고와 수술, 그리고 모금 운동까지, 그리고 나는 일련의 일들을 남에게 설명을 하다가 깨달은 점이 있었다.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 될수록 스스로가 정리가 되었다.
“저는 제가 모든 것을 잃었고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제부터 자기 혼자서 살아갈 힘이 있어야만 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는 그렇게 믿었어요. 결국 터널 속에서 절망의 끝에서, 벼랑에 선 후에야, 모든 노력을 그만둘 수 있었어요. 어떤 노력도 나를 늪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했을 때, 나를 편안히 놓아줄 수 있었네요. 그제야 길이 나타났어요. 실제로는 제가 절벽이라고 이제 길이 없다고 생각했던 제가 서 있던 곳은 절벽이 아니었는데 그저 인생의 긴 길의 거쳐가는 중간 지점에 불과했는데, 저 혼자서 이제 길은 끝났다고 잘못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리고 든 생각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때 길은 열린다’라는 말이에요.”
나는 아직까지도 할 말이 남아있었다. 한 번 터진 봇물은 주위가 다 잠길 때까지 멈추지 않는 법이다.
“나는 나에게서 자유로워졌어요. 그리고 나 자신을 용서했어요. 용서라는 말은 항상 밖으로 향해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가해자에 대해서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인지 무언 지는 몰라도 금방 용서를 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미움과 때로는 저주의 말까지 퍼붓고 있었어요.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저는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던 나, 사회적으로는 보잘것없는 지금의 나를 그 자체로 다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이제까지 과거의 나를 바라볼 때는 마치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못난이 취급을 해 왔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알았어요. 저는 최선을 다한 결과로 지금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그래서 돈도 없고 직장도 없는 나지만, 더 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고 저를 도와준 사람들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앞으로 증명해야 하겠죠. 그것이 최소한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이렇게 내 입에서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머리는 정지해 있고, 가슴속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멜린다는 참을성도 좋게 내 말을 하나도 끊지 않고 다 들어주었고, 이제 내가 마침표를 찍어 나서야 말을 했다.
“제가 심리학자가 되어 상담을 한 중에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서 너무 고마워요. You made my day!”
멜린다의 눈은 발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나도 그랬다. 우리는 무언의 동의로 허그를 했다. 더 이상 심리학자와 상담자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만 남았다. 그것이 마지막 상담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앞길을 축원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처음부터 이렇게 정리될 것이라고 안 것은 아니지만, 멜린다에게 설명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생각이 다 정리가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야만 바르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 버릴 때 생각하지 못하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나는 내 생각에 나를 가둔 꼴이 되었고 그 감옥을 누가 만든지도 모른 채, 애꿎은 신을 탓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만든 것을 부수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다. 밖의 감옥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생각의 감옥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결국 돌아 돌아 ‘나’로 돌아온 것이었다.
모든 생각이 정리된 후에 건물을 나서자 호주의 강렬한 햇살이 여전히 내리쬐고 있었다. 살을 뚫고 나갈 정도로 강렬한 태양빛이 마치 터널을 뚫고 나온 뒤에 맞이하는 세상의 빛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