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끝. 내가 시작하는 하나

결국, 트라우마는 무엇이었을까?

by 다문 DaaMoon

나는 육교 위에서 차가 지나가는 것을 잠시 멈춰서 보고 있었다. 다리는 더 이상 후들거리지 않았다. 육교는 흔들리지 않았다. 차들, 버스가 내 앞 쪽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냥 풍경이었다. 가끔씩 보면 멍하게 보게 되는 그런 일상의 풍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돌아와 있었다. 트라우마는 없었다. 나는 나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이전에는 겁이 많이 났었던 시티에 있는 스토리 브리지 Story Bridge에 재도전해 보았다. 역시나 큰 다리고 대형 화물트럭이 주는 위압감은 그대로였지만, 다리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없었다. 그대로 최고로 높은 곳까지 걸어 올라갔다. 괜찮았다. 이제야 저 멀리 바다 쪽의 풍경을 보고 반대편에 있는 홍콩 같은 도시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소공포증은 트라우마 이전보다도 더 나아진 것 같았다. 이제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다음으로는 낮의 공원, 밤의 도심지 등으로 이제까지 공포를 주는 곳으로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밤의 도심지는 블록에 따라서 위험한 곳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메인 스트리트에서는 왼쪽 뒤에서 나를 추월하는 사람도 더 이상 나에게 위협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트라우마는 무엇이었을까? 사라진 것일까?’


나는 트라우마의 환경에서 그 앞으로 이미 나아가 있었다. 트라우마는 기억의 저편에 존재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말이다. 다 내 환상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난리를 이렇게 했다고 느껴져 잠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잠시 일 년간 나와 함께 했던 트라우마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나는 실체가 없지만, 존재했었어.’

목소리가 있었다.


‘정면으로 서서 나의 세례를 받았던 너에게 얘기를 해 줄게.’

트라우마였다.


‘네가 느낀 공포, 불안은 모두 네가 만들어낸 결과야. 물론, 실제로 눈을 다치고 몸이 그 기억을 알고 반응이 온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트라우마의 인자가 네 속에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야.’

‘다 내 탓이라고? 남이 나를 때렸는데 어떻게 내 탓이 될 수가 있지?’

‘너만 다쳤잖아. 너 옆의 사람은 괜찮았는데 말이지.’

‘나라서 다쳤다는 말이야?’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묘하게 납득이 되었다. 그래 나라서 이 모든 일이 있는 것이겠지. 나란 존재가 없다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것이니.


‘그건 네가 제일 잘 알 거야.’

‘…’


트라우마는 마치 자신의 역할이 있는 듯 계속했다.


‘네가 이제까지 살면서 몸이나 머릿속 생각으로 베인 습관, 그리고 성격들 중에 이런 트라우마로 발전될 수 있는 씨앗을 푸려 놓은 것이지. 이번에는 눈을 다쳐서 온 트라우마가 가장 큰 요인이지만, 네 경험으로 알듯이 다른 것들까지도 더 크게 반응했지. 예를 들면 고소공포증이나 생기지도 않는 비현실적인 위험한 상황에 대한 걱정 같은 것들이야. 이런 것들은 어떤 다른 계기가 생기면 갑자기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이 자라나지. 원주민, 공원, 밤이라는 사건과 관련되는 트라우마가 생겼을 때, 다른 것들도 동시에 그 모습을 드러내 어떤 요인은 큰 나무로 크고 또 다른 요인은 무성한 잡초가 되어, 어느새 숲을 이루어 버리지. 너는 그 숲 안에서 길을 잃은 한 마리 사슴이 되어, 어디로 가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지. 그래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포기를 하기까지 갔었지.’


‘하지만, 내가 말했듯이 나는 형체가 없어. 한 가지 네가 눈치를 챈 것은 그 숲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지. 그래서 너는 숲에서 나가기 위한 노력, 숲을 없애기 위한 노력, 나중에는 네가 힘없는 사슴이라는 믿음까지 다 버렸지. 그때 숲이 없어지고 나는 네 기억의 뒤안길로 한 순간에 이동했어.’


‘너는 이제 앞으로 걸어가도록 해. 나는 작별 인사를 고할 테니.’


내가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그는 작별인사를 하고 더 이상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노력의 결과는 썩은 열매로 귀결되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았다. 다시 살펴본 썩은 열매 안에는 내가 모르던 씨앗이 있었다. 나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살고 난 후에야 겨우 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세상을 향해, 온전한 내 의지로 한 발짝 내 디딜 각오가 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했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하다고 하기보다는 더욱 평범해진 것이다. 외모가 눈에 띄게 특출 나지도 않고 직업이 상위 10%에 드는 것도 아니다. 그냥 보통의 사무실에서 볼 수 있는 사원의 모습이며, 친구가 아니면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외모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남에게 피해가 안 가는 수준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를 지키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무섭거나 두려운 것이 이 세상이 아니라, 내가 100% 순수한 나로서 살 각오를 가지고 살아가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진짜 내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열. 내게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