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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문제인가?

나는 불편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by 다문 DaaMoon

어릴 때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 그건 누가 '너는 EQ가 참 높은 것 같아'라고 할 때마다 상기되었던 것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공감을 잘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를 잘 보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되던지 나는 남의 기분을 잘 맞춰 주었다. 그리고 이 능력이 극에 달했을 때 '물듦'이라는 문제가 생겨났다.



스펀지는 물을 잘 흡수한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을 흡수한 무엇인가로 채운다. 나는 어느새 감정의 스펀지가 되어있었다. 좋은 감정은 상관없었다. 물들면 나도 좋아진다. 행복한 감정, 기쁨 등등은 얼마든지 흡수하고 싶은 에너지다. 하지만 어둡고 불편한 감정이 있다. 특히 화나 분노는 내게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화를 내면 그걸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눈 끝이 조금 올라간 정도로도 그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것이 레벨업이 되었는지, 누가 화를 내면 그게 꼭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옆에 있는 것만으로 그 감정을 받기 시작했다. 아마도 보통은 남의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더라도 그 기분을 꼭 당사자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처럼 감정을 느꼈다. 내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지만 내 마음은 지하로 내려가는 듯 훅 떨어졌고 기분도 몸도 처지기 마련이었다. 그러고 나면 나는 마치 뾰족뾰족한 바늘로 둘러싸인 조그만 주머니 속에 들어간 것처럼 조금만 흔들려도 상처 입기 시작했고, 눈 밑엔 다크서클이 비에 녹아내린 녹처럼 밑으로 흘러가기 일쑤였다.


도저히 참기 어려운 어느 날,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내 감정이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하게 다 받아들일까?'


마음의 매뉴얼이 없는 만큼 답을 쉽게 찾아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힌트를 얻었다. 그건 나는 마음을 잘 여는 사람이라는 것. 마음의 창이 워낙 크게 열려있으니 바람이 잘 통하긴 하지만 그만큼 먼지도 쌓인다. 나는 이 마음의 창을 조절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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