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편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있긴 있지만 금세 그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공기가 아닌가 싶다. 있는 건 알지만(없으면 죽어버리니), 눈에 보이지도 않고 너무 차고 넘쳐서 그런지, 매 순간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공기를 생각하지 않는다. 좋든 싫든 냄새라도 나면 그나마 공기가 있긴 있구나 싶은 수준이다. 공기는 그런 것이지만, 내가 공기 같은 사람이 되면 좋은 기분이 아니다.
모두가 물속에 있는 거라면 내가 공기인 것만으로 모두들 고마워할 것이고 내 존재를 항상 염두에 둘 것이다. 하지만 물 밖에서 공기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면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유령이 낫다. 그러면 적어도 방심한 사이에 옆으로 가서 닭살이라도 돋게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일단 내 경험 상, 회사에서 공기와 일체화를 이루어버리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일이 많아 잔업을 하던 평소에 자기 일을 문제없이 잘 처리해도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마치 50명이나 되는 클래스에서 중간층은 선생님도 기억을 못 하듯이 특별히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직원 A가 돼버린다. 하지만 상사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태도가 전혀 다른 동료 직원의 평가가 나보다 더 낫기라도 하면, 누구에게라고 그 대상은 명확히 꼬집을 수는 없지만 부아가 치민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부아는 내 이성과 관계없이 마음속 깊은 언저리에서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좋다. 인정하자, 난 어차피 공기이다. 그럼 적어도 색깔 있는 공기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맛있고 향기로운 공기는 노력하면 가능할 것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한 것은 말 그대로 향기를 바꾸는 것이었다. 그래서 디퓨저를 샀다. 주변 사람도 코는 다 있는지 반응을 하면서 자연스레 내 공기 주변으로 화제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의도를 넘어서서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건 상사가 디퓨저에 덕후였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콧구멍 초짜였지만 열심히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 매장에 가서는 여러 종류의 디퓨저의 향기를 맡기도 하고 이야깃거리를 좀 더 높여 나가기 시작했다. 디퓨저를 사 드린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상사로부터는 이전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없는 내용으로 평가할 수는 없었겠지만, 내가 한 실적에 대해서는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으니 나름 전략이 성공한 샘이다. 그렇게 나는 내 공기에 색을 입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