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조각
나는 그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임신한 걸 알았던 순간, 도서관에 가 산더미처럼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책을 쌓아놓고 읽어나갔던 것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우주를 길러내는 일이 지식으로 해결되는 게 아닌 건 안다. 다만 겪어본 적 없는 양육상황에서 마주칠 수많은 결정의 순간들에 가장 적절한 답을 고르고 싶었고 이를 위한 대비책으로 나는 겨울철을 맞이하는 개미마냥 정보를 모으고 또 모았다.
그렇게 모은 정보 중, 아이의 게임에 대해서 전문가 간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공통된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해주라는 것이다. 어라. 나는 게임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어쩌나. 우리 엄마는 같이 게임을 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잘만 큰 것 같다며 반발해 보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때 아빠와 닌텐도로 슈퍼마리오를 함께 했던 즐거운 추억이 있다. 엄마는 비록 함께 게임을 해주시진 않았지만, 당시 정식 수입이 되지 않던 게임팩을 구해다 주셨던 기억이 난다. 맙소사. 그런 정성으로 내가 컸으니 나도 내리사랑을 보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딸이 2학년 되던 해, 갑자기 나에게 와서 로블록스를 함께 하자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해줘야 해.
어떤 게임인지 내가 알아야 하고, 이 게임을 매개로 아이와 대화하고 공유하는 취미와 추억을 넓히고, 온라인 게임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험한 언어폭력으로부터도 아이를 지켜야 한다. 그러니 좋은 엄마가 되려면 함께 게임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닌텐도와 너구리 게임만 알던 80년대 안수현 씨에게 로블록스의 세계는 너무나 방대하고 어려웠다. 그래도 어찌어찌 아이디를 생성하고 딸이 시키는 대로 “어답트미-입양하세요”라는 요상한 이름의 게임에 접속했다. 게임 속에 들어가니, 조그마한 아이가 다가와 나에게 엄마라고 부른다. 딸의 캐릭터다. 게임 속에서도 나는 엄마고 딸은 아이란다. 여기서 도대체 뭘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딸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갔더니 집이 나왔다. 딸은 게임 속에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추구하기 시작했다-강아지 두 마리를 샀다. 놀랍게도 게임 속 세상은 현실과 닮아있었다. 나는 딸을 씻기고 먹이고 재워 학교도 보내야 했으며, 개스키들도 씻기고 먹이고 재워 강아지 학교에 보내야 했다. 그 어느 하나 소홀히 하면 사람이건 개건 시름시름 병이 들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했다.
나는 가뜩이나 방향치인지라 게임 속에서도 길을 잘 못 찾는데, 새로 시작한 게임의 낯선 맵이니 얼마나 더 헤맸는지 모른다. 개스키 학교 가서 등교시키고, 딸도 학교 가서 등교시키고. 게임 속에 플레이어들은 어찌나 많은지, 잠시만 정신을 놓으면 딸하고 이산가족이 되어있었다. 그러면 또 어디서 만나자며 찾아가는데 한 세월이 걸린다. 딸을 찾아놓으면 이번엔 개스키들이 사라진다. 환장할 노릇이다. 결국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양 옆구리에 개스키들을 끼고, 딸은 목마를 태운 채, 게임맵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게임 아바타인데도 내 아바타의 등어리가 흥건히 땀으로 젖어있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딸을 잘 놀아주고 싶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내 아바타의 딱한 꼬락서니도 못 본 척 눈을 질끈 감고 계속 게임을 진행했다. 이놈의 게임 속 세상은 뭐 이리 잘 구현해 놓은 건지 현실세계와 비슷한 부분이 정말 많았다. 쓸데없을 정도로 구현해 놨다. 딸은 강아지에 이어 계속해서 현실에서 못 이룬 꿈을 게임 속에서 추구하기 시작했다. “엄마 캠핑 가고 싶어,” “엄마 핑크 자동차 사고 싶어.” 캠핑을 가려해도, 핑크 자동차를 사려해도 돈이 필요했다. 난 이제 개스키들과 아이를 학교에 집어넣은 후, 게임머니를 벌기 위해 일하러 가는 워킹맘이 되어야 했다. 맙소사. 게임이 재밌자고, 힐링하자고 하는 게 아니던가. 왜 나는 게임 속에서도 가사노동, 육아노동, 노동 또 노동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나는 짙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메타버스가 여기 있구나. 여러 개의 우주에서 다중 노동자가 되는 게 메타버스였단 말인가. 이 무슨 디스토피아적 미래인가. 가상현실이라는 게 설상가상의 가상이던가...
결국 나는 게임을 중간에 때려치웠다.
나 안 해!
하나도 재미없어!
이거 굳이 게임까지 안 해도 머리에 꽃 달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워킹맘으로 이미 살고 있다고!
쾅! 그렇게 나는 거칠고도 급박하게, 메타버스의 문을 닫아걸었다. 로블록스 캠핑장에는 두 마리의 개스키와 방금까지 너무나 행복했던 딸의 아바타만 오도카니 남아있었다. 엄마와 즐겁게 놀고 싶었을 뿐인 딸은 그 어떤 사전예고도 없이 12시를 맞이한 신데렐라가 되어버렸다.
나는... 나는 그냥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