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조각
“엄만 왜 맨날 아파?”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허리 통증에 잘 걷지도, 서있지도, 앉지도 못하고 누워도 불편해 이리저리 낑낑대는 나에게 어린 딸이 툭 던지듯 물었다. 서운함도 잠시, 나는 저 말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나도 저 말을, 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엄마는 왜 맨날 아플까.
내 기억 속, 엄마는 자주 아팠다. 그래서 약한 사람이었다. 어둑한 안방에 누워서 아파하는 엄마. 그렇다고 아이들이나 남편 뒷바라지, 시댁 일정을 허투루 하는 바는 없었다. 다만 자투리 시간에 엄마는 앓곤 했다. 엄마가 엄살을 부린다거나 꾀병이라 생각한 적은 없다. 그저 잦은 병치레가 엄마가 몸이 약하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엄마를 걱정하면서도 나는 튼튼해서 다행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천년만년 튼튼할 것만 같던 내 몸뚱이가 마흔 중반이 넘어서 갱년기 초입에 들어서더니 예상치 못한 순간에 헛발질을 하기 시작했다. 일상의 동작들을 하다 난데없는 통증이 찾아와 일주일씩 나의 일상을 묶어놓았다. 재채기를 하다 허리가 삐끗하기도, 계단을 내려가다 날카로운 칼로 쑤시는 듯한 무릎의 통증이 찾아오기도, 자고 일어났더니 목을 돌릴 수 없이 아파 며칠을 고생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휙 고개를 돌렸더니 어지럼증이 갑자기 찾아와 그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그 어느 것도 큰 병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노화가 원인이라 했다. 마음은 아직도 저 앞서 나가고 있는데, 몸이 못 따라주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우리 엄마처럼, 낮에도 어둑하게 불을 꺼놓은 방에서 쉬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직장일도, 가정일도, 교회 일도, 자기 계발을 위한 일들도 산적했기에 누워있을 시간이 없었지만 누워있었다. 그 쉼이 나쁘지만은 않았으나 어쩐지 죄책감이 느껴졌고, 엄마를 찾는 아이에게 “미안해 엄마가 아파서”하고 거절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그 끝에 딸아이가 나에게 물은 것이다. “엄마는 왜 맨날 아파?”
삼십 년 전, 내가 엄마에게 던졌던 그 질문을 도로 받고 나서야 나는 엄마가 왜 맨날 아팠는지 되짚어보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삼 남매를 키워야 했고, 홀어머니와 어린 외삼촌을 돌봐야 했으며, 쉽지 않은 시댁도 모셔야 했다. 요즘처럼 식세기, 로봇 청소기, 건조기 같은 이모님 삼종 세트는커녕 배달음식조차 없던 시절이니 그 고단함이 얼마나 더했을까. 공부도 잘했고, 회사에서도 촉망받는 인재였지만, 시어머니가 받은 점사에서 “며느리가 직장 다니면 아들 앞길 막는다”라고 나와 하루아침에 다 내려놓고 집안일만 해야 했던 엄마. 성취와 진보를 보기 힘든 가사노동을 쉬임 없이 이십여 년 해오다 갱년기까지 와 신체의 변화가 오니 엄마가 어찌 앓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저 쉬고 싶지만, 엄마를 찾아대는 그 수많은 손길을 뿌리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쉬려면 아파야만 했을게다.
갱년기는 십오 년 정도의 기나긴 과정이라 들었다. 마흔 중반의 나는, 기억 속 엄마의 그 자리에 서서 엄마를, 나를 또 딸을 바라본다. 어떻게 갱년기를 맞이할 것인가. 어둑한 방 안에서 홀로 앓아가며 힘겹게 그 시기를 넘겼던 엄마. 나는 그 시기의 엄마에게 고마움과 안쓰러움을 느끼며 모든 딸들의 다짐을 해본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래서 운동도 다닐 거고, 동아리 모임도 할 거고, 직장도 계속 다니며, 아프지 않아도 내 시간과 쉼을 가족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거야. 먼 미래, 나의 딸이 “엄만 왜 맨날 아파?”라는 질문을 받지 않도록, 미안해하지 않고서도 당당히 쉬고 싶을 때 쉬며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나는 오늘의 나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나의 갱년기는 엄마의 지난 고통을 이해하고 딸의 다가올 미래를 해방하는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되어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