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기록과 일반 역사 기록이 만났을 때
(성경의 여러 인물들이 비문에 기록되어 있지만 부조로까지 조각되어 있는 인물은 예후가 유일합니다.)
종종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성경 외부 자료 (흔히 석비에 기록된 비문) 에도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성경의 기록과 외부 자료의 기록을 비교 대조해 봄으로써 교차 검증을 할 수 있습니다. 두 자료가 동일한 기록을 하고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지만, 만약 두 자료의 내용이 상충할 때는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쉽게 말해 성경의 기록이 맞는지 아니면 외적 자료의 기록이 맞는지 혹은 둘 다 틀린 지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게 됩니다.
성경의 기록이 무조건적으로 맞다고 주장하면 1차 자료적 신빙성을 앞세워 외부 자료의 기록이 맞다고 주장하는 의견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물론 성경을 1차 자료로 볼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성경은 "원본(Original text)"이라 할 수 있는 문헌이 없습니다. 여러 사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모이고 모여 지금의 성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을 완벽한 1차 자료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2차 자료도 아니기 때문에 참으로 애매합니다. 반면에 고대 비문은 분명 1차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비문으로 새겨진 이후에는 편집과 수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성경이 고대 비문과는 다르게 오랜 시간에 걸쳐 저작, 내용의 첨가, 편집의 과정을 걸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성경의 기록을 성경 외부 자료의 기록보다 못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고대 근동 내 비문들은 왕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이기에 내용의 조작이 있을 수 있으며 다소 선전적(propagandistic)이고 과장된 표현들도 빈번히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특정 내용이 다른 외부 자료의 내용과 상충하는 경우 단순히 A가 맞다 B가 맞다 식으로 단정을 짓기보다는,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오랜 기간 비교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열왕기서에 등장하는 예후입니다. 예후는 군사 지도자에서 반역을 통해 이스라엘의 10대 왕으로 즉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열왕기하 9-10장에서 그의 관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특히 직전 오므리 가문의 마지막 왕 요람(여호람)을 살해함으로 오므리 가문에 종말을 고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기록하는 예후에 대한 내용과 성경 외적에서 기록하는 그의 내용이 복잡하게 상충됩니다.
먼저 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Shalmaneser III)의 원정 기록을 담은 블랙 오벨리스크(Black Obelisk)에 예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후가 살만에셀 3세에 조공을 바쳤다고 기록하며 예후가 그 앞에서 무릎 꿇는 모습이 부조로 조각까지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기록하는 예후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기서 예후는 "오므리의 아들” 혹은 "오므리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므리는 예후가 숙청했던 왕조이기에 여기서 예후에게 부여된 “오므리 아들/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성경의 내용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1993년이라는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어 구약 학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던 텔단 비문(Tel Dan inscription)입니다. 약 기원전 9세기 아람어로 기록된 이 비문에는 당시 아람-다메섹의 하사엘 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스라엘의 요람과 유다의 아하시야를 무찔렀다고 기록합니다(여기서 요람과 아하시야의 이름도 온전히 보전이 되진 못했지만 주변의 단어들과 문맥적 상황으로 추정 가능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요람과 아하시야는 예후에 의해 살해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예후에 관한 성경의 기록과 성경 외적의 기록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살만에셀 3세의 비문의 경우에서 혹자는 단순히 당시 앗수르가 잘못된 정보로 예후를 오므리 가문으로 잘못 기록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왜 그런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연구자의 역할일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러한 난제 속에서 A가 맞고 B는 틀리다 식의 이분법적 단순 논리보다는, 먼저 성경의 자료와 성경 외부 자료를 철저히 분석하고, 이후에 그에 관한 다른 학자들의 연구사를 정리해서 기존에 놓쳤거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언젠간 분명 두 상충되는 자료 속에서 새로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