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드어 (Akkadian) 해독하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의 역사는 매우 길고 복잡합니다. 한글만 놓고 보더라도 15세기에 세종대왕에 의해 처음 소개된 훈민정음과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문자는 시대적 상황과 문화의 변화, 그리고 사용자의 편의에 맞춰 매번 바뀌고 진화합니다. 이러한 작은 변화가 쌓이다 보면 같은 언어라 할지라도 전혀 다른 형태와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게 바로 문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4000년 전 사람들이 읽고 썼던 문자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요? 그들은 어떻게 글을 썼고 읽었을까요? 당시에 사용되던 여러 문자들이 있었겠지만 오늘날까지 비교적 많이 알려진 문자들 중 하나가 바로 아카드어(Akkadian)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길가메시 서사시 (Epic of Gilgamesh), 함무라비 법전 (Code of Hammurabi) 모두 아카드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아카드어는 셈어군(Semitic)에 속하는 언어로 그 안에서도 동셈어군(East Semitic)에 속하는 언어입니다. 약 기원전 2500년 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대략 기원전 100년경까지 사용되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아카드어가 사용된 문명권은 중학교 사회시간에서 흔히 배우는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였습니다. 오늘날 이라크가 위치한 곳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주변에 거주하던 고대인들에 사이에서 성행한 문자였죠. 이 문명권의 사람들은 굉장한 기록 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의 장르도 거래 영수증부터 신화, 서사시, 법문, 왕의 행적, 수학, 의학, 문법, 사전까지 오늘날만큼이나 매우 다양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매년 아카드어로 기록된 수많은 토판들이 끊임없이 발굴되고 있는데, 이렇게 무수히 많은 기록을 남겨준 덕분에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학교 사회책에서 처음 본 토판에 기록된 쐐기문자는 왠지 모르게 저의 흥미를 자극시켰습니다. 수천 년 사람들도 문자가 있었다는 게 놀라웠고, 그들도 나름의 법과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먹고살며, 그러한 삶을 기록까지 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져서였죠. 멀지만 결코 멀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그들의 문자를 언젠간 꼭 한번 읽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지금 제가 이와 관련된 공부를 업으로 삼게 된 것도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중학교 때 느꼈던 이 지적 호기심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카드어는 오늘날의 문자와는 매우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래서 이해하고 외워야 되는 문법도 많고 문자 체계 자체도 현재 사용되는 문자들과 워낙 다르다 보니 배우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게다가 아카드어는 수백 개의 쐐기문자(cuneiform)로 이루어진 문자이기에 이 낯설고 복잡한 문자에 익숙해지려면 오랜 기간 학습을 이어 나가야 합니다.
영어는 음소(Phoneme)라고도 할 수 있는 여러 알파벳을 조합하여 단어를 만듭니다. 쉽게 말해 Apple은 다섯 개의 음소/알파벳이 모여 “사과“라는 단어를 만들죠. 하지만 아카드어는 알파벳이라는 게 없습니다. 아카드어 각각의 문자는 주로 하나의 음절(Syllable)을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앞선 Apple로 예를 들자면, 이 단어는 총 두 개의 음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ap / ple). 이것을 아카드어에 적용시키면 아카드어 안에서 ap을 뜻하는 문자 하나 그리고 ple 뜻하는 또 다른 문자 하나, 총 두 개의 문자로 Apple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물론 이런 아카드어 문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카드어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총 3가지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1. 먼저 아카드어 문자에서 영어 알파벳 형태로 음역(transliteration)하기 (예. 문자 1, 문자 2 > ap / ple)
2. 음역한 음절들을 모아 단어로 조합하기 (예. ap / ple > apple)
3. 그 단어를 해석하기 (예. apple > 사과)
간단한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 세 개의 아카드어 문자들을 위에서 설명했던 세 단계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1. na - ak - rum
2. nakrum
3. 적, 적대자 (enemy)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 세 개의 문자들은 각각이 한 음절을 나타냅니다. 그 음절들이 모여 하나의 단어가 되고 그 단어를 통해 이 문자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아카드어 안에도 여러 종류의 문자 형식들이 존재합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약 기원전 2000-1500년) 시절 공식 비문에 새겨졌던 레피 더리 형식 (lapidary style), 일반적인 토판에 기록되어 있는 필기체 형식 (cursive style), 그리고 약 기원전 10세기 신앗시리아 제국 시절에 널리 사용되던 신앗시리아 형식 (Neo-Assyrian style), 이렇게 세 가지가 대표적입니다. 위에 예시로 제시한 문자는 신앗시리아 형식의 싸인으로 아카드어 내에서도 비교적 후대에 널리 쓰이던 형식이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다뤘던 글에도 아카드어로 된 비문이 나오는데요. 그 비문에 적혀 있는 일부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던 세 단계 해석방법으로 다시 한번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m)ia-ú-a DUMU (m)ḫu-um-ri-i
2. Iaua DUMU Ḫumrî
3. 예후 오므리의 아들
사진에서는 왼쪽 위첨자(Superscript)로 작게 기록되어 있고, 바로 위 단계 설명에서는 이름 앞에 "(m)"이라고 기록한 것은 아카드어에서 흔히 사용되는 지정사(determinative)입니다. 위에 비문에서는 숫자 1 모양과 비슷한 쐐기문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특별한 해석은 없이 그저 특정 남성 이름이 등장할 때 이를 알리기 위한 역할을 합니다. 이 문자를 보면 "아 남자 이름이 나오는구나!"하고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여기서도 각각 예후의 이름과 오므리의 이름 앞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지정사는 신명, 특정 영토 이름이 나올 때도 빈번히 사용됩니다.
또 DUMU라는 문자만 모두 대문자로 되어 있는데, 이 문자는 "아들" 혹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아카드어 안에서도 외래어가 있었는데요. 그 외래어는 다름 아닌 수메르어(Sumerian)라는 언어였습니다. 마치 한국어에도 여러 외래어가 원래 한국말인양 자연스럽게 사용되듯이, 아카드어에도 수메르어에서 그대로 가져온 외래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했습니다. 이 DUMU라는 단어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듭 반복하면서 여러 쐐기문자들로 가득 찬 아카드어 토판과 비문을 해독하면, 잠들어 있던 고대인들의 기록이 다시금 깨어나게 됩니다.
기원전 1000-2000년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문자를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읽는다는 건 마치 그들과 소통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입니다. 비록 생활했던 시기와 장소 그리고 사용하는 문자가 달랐을지라도 그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먹고 자고 마시며 또 그러한 생활을 기록으로 남기는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그때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순 없지만 문자라는 매개체는 그들의 삶, 문화, 역사를 전해주며 그들과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