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도 파리에서는 야외활동을 지양해주세요
8. 20년을 대구에서 살았다. 이 정도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41도 파리 완승.
그래도 천사들이 있는 도시라 참는다.
18. JULY. 2022
니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토스트 하나를 물곤, 허겁지겁 비행기에 오른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 낭만의 도시, 파리에 간다.
다행히 이번 비행기도 결항되지 않았고, 무사히 파리에 도착했다. 분명 여름 유럽은 시원하다고 했는데 우리가 도착한 파리는 40도를 육박한 더위에 휩싸여 있었다.
숙소로 가는 버스는 계속 만차였고 3번은 놓친 후에야 겨우 탈 수 있었는데, 교통카드를 구입하는 곳을 찾느라 1시간 정도는 정신없이 걸은 후였기에 우리에게 남은 여유는 없었다. 에어컨도 없이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 안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그 와중에 파리에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두리번거리기를 멈출 수 없었는데, 마치 예전부터 동화 속 한 동네 이름처럼 듣던 파리라 그런지 내 눈앞에 펼쳐진 공간임에도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어렵사리 숙소에 겨우 도착했지만, 우리는 에어비앤비 열쇠를 찾을 수 없어 길거리에 그대로 낙오되어 버렸다. 유럽에서는 벌써 3번째 도시였지만 집 문을 한 번에 연 적이 없다. 그 와중에 그게 익숙해져 버렸는지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귀찮았다. 아휴 또 집주인한테 연락해 봐야겠네.. 숙소로 겨우 들어와 방을 들어왔는데 알고 봤더니 방별로 다른 사람들이 묵고 있었고, 화장실 마저 공용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에어컨이 없었다. (파리가 싫었던 유일한 이유 :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파리에서 만난 천사들
숙소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우린 집 주변에 있는 중국집에 가기로 했고, 치밀하게 식당 예약까지 해둔 채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이 잠기질 않았다. 열쇠랑 싸우길 30분이 넘어갔고.. 식당 예약은 이미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지나가던 할머님 한 분이 자기 일처럼 함께 열쇠를 돌려주시기 시작했다. 열쇠가 잘 되지 않냐며 열심히 문을 만져보시다 결국 해결이 안 될 것 같았는지 아는 지인분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유럽에서 이렇게 친절한 분을 만날지 상상도 못 했는데.. 심지어 인종차별이 심했다고 들었던 파리에서는 더욱이나! 결국 직접 해결하신 할머님께서 열쇠를 여는 팁을 알려주셨고, 덕분인지 그 이후에 한 번도 열쇠로 고생한 적은 없었다. (물론 쌍둥이는 열쇠 여는 법을 결국 터득하지 못해, 항상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열쇠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감사함에 연거푸 인사를 드리고, 뛰어서 중국집에 도착했지만 예약이 되어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안 벙벙하게 서 있던 우리는 결국 비어있는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그 무더운 더위에 에어컨이 켜지지 않는 기이한 체험을 했다. 심지어 테라스 자리까지 오픈되어 있어 굉장히 더웠다는.. 음식을 먹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식당 주인이 오직 프랑스어와 중국어만 할 수 있는 중국인이란 사실을 그제야 깨닫고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제발) 계산하고 싶어요’를 파파고로 쳐서 겨우 식당을 나올 수 있었다. 시원한 물이 너무 간절했던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마트에 들러 물을 구매하려 하는데, 이젠 카드시스템이 지금 고장 나서 현금결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어떻게 단 하나도 쉬운 일이 없는지.. 낭만의 도시 파리에 왔건만, 낭만은 상상 속에 좋은 것으로 기억이 되어서 낭만이란 이야기를 듣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의 파리는 사실 낭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니. 파리는 낭만의 도시 맞다. 계산대 바로 뒤에 서 있던 남성 분이 우리 대신 결제를 해주겠다며 돈을 내고 있었다.
‘Merci, beaucoup’ (정말 감사해요)
아, 대학교 교양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보람이 있구나. 그래도 감사하단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교양에서 배운 건 확실히 있다. 메흐씨 보꿉을 계속 외치던 우리는 후다닥 도망치듯 집으로 뛰어왔지만, 이 짧은 시간 안에 이 많은 천사를 만날 수 있다니 프랑스 파리에서의 시작이 아주 좋다.
19. JULY. 2022
파리 역시 계획 없이 왔던 곳이라 전날 잠들기 전 겨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식당에 가도 에어컨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선 우리의 목적지는 ‘에어컨이 있는’ 미술관으로 정해졌고, 오르세 미술관 예약을 무사히 마치고 잠에 들었다. (오랑주리 미술관과 루브르 미술관은 각각 예약 마감/휴무였다. 왜 우리는 미리 알고 가지 않았을까)
대학교 전공 수업을 통해 오르세 미술관의 역사에 대해 들은 바 있는데, 그런 면에서 오르세 미술관의 건축물도 나에겐 큰 관심사였다. 오르세 미술관 앞을 도착하니 예약을 했음에도 아주 기다랗게 이어진 줄들이 앞을 메웠고, 차가운 생수를 파는 사람들도 곳곳에 보였다. 역시 장사는 타이밍 싸움인가.
미술품을 오래 감상하는 타입은 아니었기에 오디오를 따로 대여하진 않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디오 가이드를 들었으면 이 글에 더 깊은 감상평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싶다. 미술품에 대한 나의 얕은 지식이 이 글에 드러나지 않게 말이다. 경험의 깊이와 지식의 폭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니 다음부턴 내 방식대로 해석하는 것보단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해봐야겠다.
유명한 명화와 조각,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가득 한 오르세. 유명한 그림을 보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만 겨우 볼 수 있었는데, 역시나 나의 시선은 명화보다는 그것을 맴돌고 있는 사람들에게 꽂혀버렸다.
특히 바닥에 앉아 오르세 미술관을 그림으로 담고 있던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 그를 지켜봤을 때도 그 주변을 쉬이 떠날 수 없었는데, 한참을 바라보다 어떤 부분을 어떤 감정으로, 그리고 생각으로 그리고 있을지 상상해 봤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서 오르세의 높은 천장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누군가에겐 직장일 수도, 또 누군가에겐 자신의 작품이 걸리길 바라는 꿈의 공간일지도 모를 그 공간에 가득 메운 목소리들이 내 감상에 합쳐지면서 작품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간 자체가 작품이었다.
쓸데없는 미사여구로 글을 쓰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려 했는데, 그동안의 내 이야기들이 너무 시간순으로만 정렬된 담백한 글들이라 단순한 생각을 한번 길게 적어봤다. 흠흠 이제 다시 또 담백하게 적어야지.
참, 가장 감명 깊게 본 작품은 바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작품이다. 물론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라 당연히 선정할 수 있지만 우리 쌍둥이에겐 특히 익숙한 그림이었다. 우리는 초등학생-중학생 (어쩌면 고등학생)까지도 이 작품의 1000피스 퍼즐을 맞추곤 했다. 보통 퍼즐을 모두 맞추려면 매일 5시간 이상, 일주일 정도 걸렸기 때문에 하나를 하면 끝까지 해내는 나의 습관은 이 퍼즐로 길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도 승부욕이 강하긴 했지만) 퍼즐을 맞추려다 보니 이 작품 구석구석 미묘한 차이까지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봤을 때는 마치 내가 이 작품을 그린 것처럼 자랑스러웠다.
아 그리고 오르세 미술관이라면 누구나 찾는 그곳. 바로 대형시계.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우리는 그 공간을 찾지 못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공간을 찾는게 별로 간절하지 않아서 ‘없네~’하고 빠르게 포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쌍둥이의 특징은 딱히 유명한 명소에 대한 궁금증이 없다는 것이다. 그곳을 찾아도 줄 서서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면 딱히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우리만 이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이 맞으니 겨울 유럽여행도 함께 했던 것 아닐까 싶다.
아무튼 시계를 찾다 오르세 미술관 안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안에 대형시계와 비슷한 구조로 무언가 있어서 그냥 본 걸로 치자면서 들어간 것도 맞다) 이것저것 맛없는 것, 맛있는 것들을 시켜 먹는데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님이 말을 걸었다.
“혹시 네가 먹는 음식은 이름이 뭐니?”
메뉴판을 가리키며 물어보셨다.
“이거예요, 맛이 괜찮네요!”
그렇게 고개를 돌리는데 음식이 살짝 염분이 있어 어르신들께 맞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음식 살짝 짜요. 참고해 주셔요!”
꺄르륵거리시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시던 할머님. 잠시 후, 그녀의 테이블엔 내 음식과 다른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그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르세 미술관을 나중에 떠올렸을 땐, 작품보다 이 할머님과의 짧은 대화가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장소를 바꿔, 오르세에 나와 바로 앞에 있다는 튈르리 정원에 갔다. 무서운 더위에 나오자마자 후회를 했지만 어쩌겠나. 심지어 튈르리 정원은 내가 파리에서 에펠탑 다음으로 가장 기대했던 공간이었다. 많은 이들의 인생샷 + 감성샷은 다 이곳에서 나왔다 해도 무방하다고 감히 생각한다. (물론 내 기준에서)
그런데 그냥.. 눈앞이 안 보일 정도로 더웠다. 진짜 더웠다. 아니 그냥 더워요. (41도였음)
급하게 콜라를 사러 갔던 미니샵 주변 야외에서는 수다를 떨고,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파리지앵은 그런 거냐며, 그런 거라면 나는 절대 파리지앵이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콜라를 사자마자 어떻게 따뜻할 수가 있지? 차마 다 먹기도 전에 따뜻해진 콜라를 먹을 수 없었다.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그것은 봄, 가을일 것이라 다짐했다. 그늘도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여름엔 다시 이곳을 못 찾겠다 싶었다. 누군가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당신이 보고 있는 튈르리 정원 후기 중에 가장 좋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더운 여름이 아니라면 파리에서 가장 오래 있고 싶었던 곳인 만큼 멋진 곳이라는 건 확실하다. 다만 날씨를 보고 이곳을 찾길 바랄 뿐.
앞으론 내가 정말 정말 사랑하는 공간이라면 더더욱 날씨를 따져서 찾으리라 생각했다. 그곳의 기억은 행복해야만 하니까. 도피처가 될 만한 곳은 특히나!
그나저나 이 멋진 공간을 수식할 수 있는 단어가 ‘덥다’ 밖에 없다니.. 나는 파리를 허투루 다녀왔나 보다. 다시 가야겠다. 핑계도 여러 개.
정원 바로 옆에 위치한 루브르 미술관. 정말 적절한 요일에 왔다면 오르세에 이어 참 좋은 코스였을텐데 오늘은 땡볕의 연속이구나.
그래도 루브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으니 어떤 여자분이 말을 걸었다.
“혹시 제 사진도 한 장 찍어주시겠어요?”
한국분이었다. 혼자서 여행에 오셨다는데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나는 몇 년은 고민하다 겨우 쌍둥이와 함께 올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분은 혼자 여행에 와서 얻은 자신감과 용기가 인생에 큰 힘이 되겠지. 20대에 혼자 그걸 해낸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오지랖으로 여겨질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나도 20대에 이곳에 쌍둥이와 함께이지만 왔으니 나 자신에게 대단하다고 말해줘야지.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이곳 파리의 여름해도 참 길구나.
오래전부터 외국의 재즈바에 대한 환상이 참 컸다. 그런데 영화 라라랜드에 나온 재즈바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곳으로 갈거라 생각했던 나는 쌍둥이가 급하게 자신이 가고 싶었던 루프탑카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갈등이 커졌다. 분명 둘 중에 하나만 할 수 있을 텐데..
결국 우리가 선택한 곳은 루프탑 카페였다. 그리고 카페 앞에 도착하자 쌍둥이는 자기가 나를 따라온냥 멀뚱하게 서있는 것이 아니겠나. 결국 내가 이끌어 루프탑으로 올라갔고, 메뉴판을 둘러보다가 나에게 한 마디를 한다.
‘야 내가 여기 메뉴판을 안 봤네. 왜 이리 비싸?’
그 말을 듣고 허탈해진 나.. 심지어 내가 시킨 칵테일은 자취방에서 해 먹은 토마토바질에이드 맛이 났다. (자취방에서 한 번 먹곤 다신 안 먹음)
열받고 말고도 없었다. 한마디로 쌍둥이는 ‘잉’스러운 표정으로 자기도 당혹스럽다고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그저 ‘얘는 뭘까?’라는 반응 밖엔 할 수 없었다.
다행이다.. 오늘 아직 에펠탑 한 발 남아서.. 이게 하루의 끝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야.
다음은 에펠탑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이야기를 최대한 짧게 맺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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