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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운 Sep 22. 2023

니스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꿈을 꿨다.

니스에서 바란 것은 없다. 그저 딱 한 순간만 허락되길 바랄 뿐.



6. 우연히 만나서 좋은 순간들도 너무 많지만,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우리는 뭐라 형용할 수 있을까?

니스에서 나에게 그런 순간이 딱 하나가 있었다.





니스에 도착하고 맞는 첫 아침이다.

어제는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오는 데에만 꼬박 하루를 썼다. 그래서 별다른 일은 없었.. 을 법도 한데 있었다.


수속에도 문제가 있을 뻔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니스에 도착했다. 우리 숙소를 향해 니스 트렘을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옆좌석 할아버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지금 니스에 온 거야?”


“나는 니스에서 오랫동안 살았는데, 정말 예쁘고 멋진 도시야”


“얼마나 머물기로 했어?”

- “3일 정도 머물 것 같아요”


“3일이면 이 도시를 알기엔 너무 짧다!”


할아버지 혹시 그거 아시나요? 할아버지의 말씀에 엄청난 자신감과 자부심이 느껴져서 벌써 이 도시가 제 마음에 쏙 들어요. 덕분에 이 짧았던 대화가 아직도 니스 바다만큼이나 잊히지 않아요.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니스에서 3일은 너무 짧았다 ©오운




영국과는 달리 니스는 무척이나 더웠다. 숨도 못 쉴 정도로! (하필 작년 여름은 유럽 역대급 더위였다)

불행히도 우리는 집을 찾을 수 없었고, 정말 같은 곳만 빙빙 돌아다녔다. 집이라고 뜨는 곳에 가면 빌딩 벽이었고, 주변은 어둠과 술로 점점 채워져 갔다.


기적처럼 숙소를 겨우 찾았지만, 로비문을 도통 열 수가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에어비앤비 주인과 연락해 비밀번호를 찾던 우리를 보곤, 다행히 안쪽에서 다른 사람이 나와 문을 열어주었고 (아마 밖으로 나가려고 한 것 같지만 우리를 위해 문을 잡아줬으니 호의라고 생각하련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들어올 수 있었다.


숙소는 나름 쾌적해서 그 자리에 바로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하루종일 공항에서 먹은 빵이 다였던 우리는 급하게 주변 마트에 가기로 했다. 런던과는 달리 무척이나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니스는 (아마 해수욕장이 발달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지만) 밤에도 네온사인이 눈에 띄었는데, 주변이 예뻐서 이곳저곳을 쳐다보다 마트 앞 노숙자를 보고 허겁지겁 겁에 질렸던 기억이 난다.


니스에 와인이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트에서 와인과 과자 하나를 사서 집으로 왔다. 그러곤 한국에서부터 열심히 들고 온 컵라면을 뜯어 오늘 하루를 축복하기로 했다. 쌍둥이는 머리가 아프다며 일찍 잠들었고, 나는 연애 프로그램을 ott로 보면서 와인 한잔을 곁들였다. 역시 남의 연애가 제일 재밌어. 뭔가 같이 떠들면서 의견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지만 그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내 주변에 한 사람 밖에 없었던 터라, 혼자 욕을 한 바가지 하면서 봤다 호호




니스 바다에서 낭만을 즐기는 날 ©오운



그렇게 잠에 들어,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지진 않았지만 어찌어찌 더위를 참고 아침잠에서 깼다. (나는 겨울에도 창문을 열고 자는 편이다)


오늘은 바로 니스 바다에서 낭만을 즐기는 날이다. 그 멋진 해변에서 수영을 하기로 했는데, 사실 나는 ‘얼마나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을까’가 내심 더 중요했던 것 같다. 허겁지겁 선크림을 바르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해변에 닿기 전, 마세나 광장과 바로 옆에 위치한 살레야 마켓에 들렸다. 살레야 마켓에는 수제 비누 등의 수제품들이 많았는데, 월요일을 제외한 날들은 모두 꽃시장으로 운영되는 만큼 다양한 꽃들이 보였다. 꽃과 식물을 좋아하여 웬만한 꽃이름은 달달 외우고 있는 나라서 언젠가는 정말 큰 다발을 사서 들고 다닐 것을 꿈꿔왔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었다. 여행 중이기도 했고, 곧 물에 들어갈 예정인지라 꽃을 손에 들고 다니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거라 여긴 나는 낭만을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니스 해변을 봤으니 우리 목표의 반은 성취한 셈이다 ©오운



"바다다!"



이번 여행은 정말 말 그대로 무계획으로 왔다. 그동안 사진으로 봤던 곳을 짐작 삼아 한두 곳 가보는 정도의 코스였던 만큼, 니스 해변을 제외하고 우리가 니스에 온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파란색 스트라이프 파라솔들이 가득 늘어선 니스 해변을 봤으니 우리 목표의 반은 성취한 셈이다. 하지만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감탄을 오래 할 여유는 없었다. 우리는 평화로운 사람들 곁으로 가 우리가 가져온 비치타월을 펼치고 자리를 잡았다.




이 행복을 당장 전해야만 했다 ©오운




사람들의 평화로운 표정에 속아, 나도 신발을 벗고 바다로 향했지만 자갈돌로 이루어진 해변이라 엄청나게 뜨겁고 아팠다. 갓 태어난 기린처럼 엉기적 바다로 겨우 몸을 옮겼고, 생각보다 차갑지 않은 바다에 몸을 실었다.


아 너무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을 마음껏 누려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런던은 벌써 기억 저 너머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쌍둥이가 몸이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물놀이는 나 혼자 즐겨야 했지만 내 행복은 이 바다처럼! 영원할 듯이 거대했다.


이 행복을 혼자 즐기는 게 거의 죄의식처럼 느껴지는 수준이라 허겁지겁 물속에서 휴대폰을 켰다. 방수팩에 들어간 휴대폰은 터치가 자유롭지 않았지만 친구들에게 전화 걸어 이 행복을 당장 전해야만 했다. 어이없게도 친구들에게 영상통화를 건 순간부터 발이 갑자기 땅에 닿지 않아, 친구들은 풍경보다 물속을 더 지켜봐야 했지만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물론 친구들은 재난 상황인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하하




푸른 바다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오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물에 닿았다가 마르기를 반복하는 살 부위는 이미 빨갛게 달아올랐다. 더 이상은 힘들다. 수영은 이쯤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돌아다니는걸! 지금 내 모습은 이곳에선 내가 신나게 놀았다는 증표가 될 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던가 싶다. 한참을 걸어오다 슬러시를 발견했는데, 이건 나중에 먹자며 눈도장을 찍어두었다. 집에 도착하니 야구 kbo 올스타전이 진행 중이었다. 신나게 라이브를 틀어놓고 빠르게 씻은 후, 미적지근한 에어컨 앞에서 과자를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그러다 보니 또 배가 고프지 않다. (입도 짧은 편이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정말 체력이 좋은 편이란 생각이 든다)



내 기억 속에서 항상 빛나있을 순간들 ©오운




이미 살은 화상을 입은 듯 따갑다. 이 글을 쓰면서 방금 니스 바다를 초록창에 검색해 봤더니, 여름에는 4시 이후에 수영하는 것을 권장한다는 글을 봤다. 근데 진짜 이게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화상은 언젠가 낫겠지만, 니스 바다는 또 언제 오겠나. 우리는 서둘러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사실 오전에 나갔을 때는 수영을 이유로 카메라를 들고나가지 못했는데, 내가 니스에 온 진짜 이유는 남기고 싶은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절벽을 찾는 일은 쉬웠다. 수영을 하면서 내 모든 신경은 절벽이 어디 있는지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저 끝에 있는 절벽이 내가 오래도록 상상해 왔던 절벽이겠거니. 거리는 생각보다 상당했는데, 혹시나 그 장면을 담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느라 더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절벽 다이빙이 불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더 긴장했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 긴장이 탁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절벽에는 그 누구도 있지 않았다. 허탕을 친 것이다. 그때 느꼈던 속상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바로 옆에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우선 거기에 올라가 마음을 좀 녹여야겠다.




전망대에 오르자 한눈에 보였던 니스의 풍경 ©오운




숨 막히는 더위에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었지만 그렇게 올라온 전망대는 속이 뻥 뚫리는 경관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더위에 잠식되어 그늘이 아니고선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곳 사진을 남긴 건 정말 광기에 휩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광기.. 그래도 그 덕에 지금 그때를 기억할 수 있으니 값지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더위에 지친 우리는 전망대에서 내려와 허기진 배를 채우러 식당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를 행운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발걸음은 또 미련하게 절벽을 향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모습.




그토록 내가 꿈꿔왔던 순간들을 만났다 ©오운





* 위 사진들은 모두 오운 (@daa_wooon) 개인 권한 저작물이며, 개인/상업적 이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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